울타리콩
울타리콩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6.2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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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이효순 <수필가>

주말이다. 출근도 하지 않는데 오랫동안 젖은 습관에 아직도 매여 있다. 담장의 철망에 걸린 잔 거미줄을 제거한다. 거미가 저 살려고 짜놓은 집을 빗자루로 모두 없앤다. 거미의 입장에서 보면 잔인하다. 빗자루로 거미줄 걷는 사이로 울타리 콩의 덩굴손이 수줍은 듯 고개를 살짝 내민다. 사랑스럽다. 모처럼 낮게 드리운 회색빛 하늘에서 보슬비가 오락가락한다. 

오래전부터 그 담장 철망을 무엇인가 활용해 보고 싶었다. 이사 와선 덩굴장미를 올려 몇 년 동안 운치있는 5월을 보냈다. 그 이후 덩굴이 오래되어 사그라져 붉은 인동덩굴을 올렸다. 그 진한 향기 속에 푹 빠져 보기도 했다. 모두 전성기가 지나니 그 관리가 힘들고 꽃들도 병이 생겨 베어 버렸다. 그 이후 여러해 동안 아무것도 올리지 못하고 그냥 덤덤히 시간을 보내던 중이다.

지난 가을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 가는 기회가 있었다. 시가지를 구경하고 재래시장을 가게 되었다. 사고 싶은 갖가지 것들이 많았다. 거리에 좌판을 벌인 아낙들이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동행한 지인들이 진한 보랏빛이 감도는 덩굴콩을 구입했다.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는 사지 않고 옆에서 구경했다. 마침 그 옆 소쿠리에 담긴 껍질을 벋기지 않은 콩 꼬투리가 있었다. 콩 주인에게 씨앗으로 몇 개를 주셨으면 하고 어렵게 말씀을 드렸다. 그 아주머니는 흔쾌히 꼬투리 다섯개를 주셨다. 기분 좋게 집으로 가져와 양달에 말렸다. 뚜껑이 열린 병에 담아 놓고 이듬해 6월이 오길 기다렸다. 

올핸 더위가 유난히 일찍 왔다. 담장 아래 콩을 서너개씩 일곱곳에 심고 매일 물을 주었다. 내 정성이 전해져 일주일만에 싹이 텄다. 후텁지근하니 식물의 자람도 눈에 보이게 하루하루가 달랐다. 어느덧 콩의 덩굴손이 올라와 고불고불 긴 머리를 여기저기로 향하여 방향을 찾고 있다. 몇 포기씩 함께 얽혀 있다. 얼른 챙겨두었던 조기 엮었던 연미색 비닐 끈을 가져왔다. 그리고 담장 철책 보호대와 적벽 돌에 끈을 묶어 연결해 주었다. 이 끈 역시 조기 손질할 때 콩 덩굴 올리려 예비해 두었던 것이다. 덩굴손을 그곳으로 옮겨주었다. 아침마다 들여다보며 문안 인사를 한다. 밤사이 조금씩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다. 식물이지만 생명이 있어 서로의 마음이 오간다.

이런 것들에 집착하는 것은 어린 시절 자라는 동안 부모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머니는 집 주변 울타리 아래 빈틈없이 울타리콩을 심었다. 가을이면 난 그 꼬투리 까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다. 윤기 흐르는 햅쌀밥에 넣어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흰밥보다 어릴 때부터 콩 물이 살짝 든 밥을 좋아했다. 맛있는 콩 내음이 밥에서 전해지기에 더 콩밥을 좋아했었나 보다. 사람은 늘 자신이 보고 자란 것들에 대한 향수가 마음 한 곳엔 남아있어 은연중 생활 속의 일부가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늘 그 내면엔 지금은 형체도 없는 돌아갈 그리운 고향이 있다. 그 고향 속에 다정하신 부모님과 함께 뛰놀던 친구, 한솥밥을 먹던 형제·자매가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마음에 남은 감정들을 은연중 정화하는 것은 아닐까.

콩의 덩굴손이 잘 뻗어 올라가도록 줄을 매어주니 방향을 잡지 못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매준 긴 줄을 타고 신나게 뻗어간다. 그것을 바라보며 왜 부모님 생각이 나는 걸까. 내가 사랑 담긴 마음으로 줄을 매준 것처럼 부모님을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도심의 담장 아래 나란히 뻗어가는 울타리콩이 사랑스럽고 정겹다. 그리고 꽃 피고 열매 맺을 그날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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