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쌍조
일전쌍조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5.06.1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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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반영호 <시인>

쌈채가 여름철 입맛을 돋워주는 동안 덩굴 식물인 오이, 호박, 수세미, 조롱박들은 세력을 점점 확장해 나갔다. 상추, 가지, 고추를 뒤덮어 화단을 점령하고도 모자라 화단을 넘어 마당까지 침범했다. 이런 식물들을 누렁이가 가만둘 리 없다. 몇 번 저지레를 하기에 주위를 주었더니 아예 덩굴 근처엔 얼씬도 않는다. 놈의 활동범위도 그만큼 줄어든 것인데 동물이 식물을 피해 다녀야 하는 꼴인데 이는 영리한 누렁이가 내 의중을 십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뿌리내린 자리에서 동물처럼 이탈하지 못하는 식물들의 정체성에 반항이라도 하듯 넝쿨들은 왕성하게 줄기를 뻗친다. 조치를 취해야 했다. 우선 비닐 끈을 처마까지 매 놓고 가로줄을 쳐 씨줄 날줄로 얽어 그물망처럼 엮었다. 그런 다음 마당으로 기어가는 줄기들을 걷어다 얹었다. 식물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한 번 줄에 올려주자 줄기식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되어 덩굴손을 비닐 끈에 칭칭 감아가며 알아서 줄타기를 시작했다.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하다. 지금이야 수리시설이 잘 되어 그렇지 하늘바래기 천수답은 모내기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수시로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고 만다. 특히 스티로폼 박스에 심은 쌈채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듬뿍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축 늘어지면서 억세고 질겨 부드러우면서 연한 쌈채 고유의 제 맛이 나지 않는다.

넝쿨들은 금세 우거지듯 어우러졌다. 그리고 연실 꽃을 피워 벌들을 불러들이더니 열매를 맺는다. 제일 먼저 맺힌 오이는 다산을 자랑하듯 마디마다 실하게 달렸고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호박과 조롱박은 벌써 처마까지 올라가 무수한 꽃을 피우고 있다. 모르긴 해도 이 속도라면 지붕꼭대기도 불사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마디마다 열매를 맺는다. 조석으로 물주기가 번거로워 그렇지 날 좋은 탓에 벌들이 끊이지 않고 날아들어 낙과되는 놈들이 없다. 

베란다 끝에서 처마까지 오른 넝쿨들로 인하여 늘 쳐놓았던 커튼을 활짝 열어놓았다. 무성한 잎이 발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인데 얼마나 유용한지 남향 집 강렬한 한여름 햇볕을 차단시켜 에어컨 선풍기 없이도 시원하다. 또한 앞집 2층에서도 집안을 보이지 않도록 가려준다.

일전쌍조(一箭雙雕). 화살 하나로 독수리 두 마리를 떨어뜨린다는 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과 같은 말이다. 

남북조(南北朝) 시대 북주에 장손성(張孫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우 영리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에 관한 지식이 깊은데다 특히 활쏘기에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어느 해 서북쪽에 있던 돌궐(突厥) 왕으로부터 북주의 왕실과 혼인하기를 원한다는 전갈이 왔다. 북주는 이를 허락하고 장손성으로 하여금 공주를 호송하게 했다. 돌궐왕 섭도(攝圖)는 다재다능한 장손성을 좋아해서 그를 돌궐에 남아있게 하면서 사냥을 하러 나갈 때는 언제나 그를 데리고 갔다. 힘차게 활을 당겨 쏘는 장손성의 활 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그를 벽력(霹靂)이라 했고 비호처럼 말을 달리는 모습을 보고 섬전(閃電:번쩍이는 번개)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어느날 사냥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바람처럼 날아가 다른 독수리가 입에 물고 있는 고깃덩어리를 빼앗으려 하는 것을 본 섭도가 장손성에게 화살 두 대를 주면서 두 마리 모두 쏘아 떨구라고 했다. 장손성은 말 머리를 재빨리 독수리들이 다투고 있는 쪽으로 향해 쏜살같이 달리면서 활을 힘껏 당겼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마리가 땅에 떨어졌다. 하나의 화살에 두 마리의 독수리가 함께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장손성이 한 대의 화살로 두 마리의 새를 쏘아 떨어뜨린 것을 일전쌍조(一箭雙雕)라고 일컫게 되었다. 같은 뜻의 일석이조(一石二鳥)는 영어 속담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의 번역어다.

오늘은 오이를 따다가 시원한 오이냉국을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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