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안녕들 하십니까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6.17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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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새삼스럽게 안녕들 하시냐고 안부를 묻습니다. 

메르스에 감염될까봐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야릇한 시국입니다. 

24시간 운영하던 응급실을 폐쇄하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고열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도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도 울고, 나이팅게일도 우는 이상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상급 의료진과 의료시설을 자랑하던 서울삼성병원이 최초 메르스 환자를 미숙하게 관리하고 질병관리본부가 안이하게 대처해 이 난리가 났습니다.

대한민국은 졸지에 메르스 왕국이 되었고, 국민들은 모두 메르스 의심환자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삼성병원의 브랜드를 믿고 치료받던 입원환자들과 외래환자들은 날벼락을 맞고 죄인마냥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외래환자 진료 및 수술 중단으로 수많은 환자들이 제때 수술 받지 못하거나 진료 받지 못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삼성병원이 메르스의 최대 진원지가 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이자 압축성장한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다행히 초기에 뒷북행정과 비밀주의로 일관해 국민들을 실망시키던 정부가 늦게나마 관련 상황을 공개하고 있고, 지자체와 공조하고 협업해 의료진 지원과 감염원 차단에 진력하고 있어 조금씩 메르스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메르스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아 걱정입니다.

향후 일주일이 고비입니다. 

코리아의 저력과 코리언의 오뚝이 정신은 이를 극복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문제는 시민의식과 불신입니다.

확진자를 치료했던 의사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환자를 돌보고, 감염환자를 실어 나른 구급대 운전기사가 여러 날 동안 버젓이 업무를 수행하고, 자택 격리자가 골프를 치러 다녔습니다. 

그러니 길을 걷다가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가도, 이런저런 모임자리에서도 확진자와 접촉했거나 감염의 진원지인 병실이나 화장실 같은 감염동선에 노출된 사람이 주위에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는 참으로 서글픈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태껏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던 옥천읍 5일장이 휴장하고, 애꿎은 옥천 우시장이 잠정폐쇄된 것처럼,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보류되고 있습니다.

학교는 휴학하고, 영화관도, 식당도, 병원도, 재래시장도 파리만 날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외국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사회ㆍ경제ㆍ문화 전반이 생기를 잃은 채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누구를 나무랄 수도 없는 광풍입니다. 

광풍은 인명을 살상하고 재산과 경제를 일순간에 무너뜨리지만 길게 보면 찰나의 재앙입니다. 반드시 스쳐 지나갑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메르스 제압을 위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미국방문을 연기했고, 모처럼 여야 정치권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의료진들도 메르스 치료에 사명감을 불태우고 있고, 국민들도 서서히 불안에서 벗어나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재무장하고 있습니다. 메르스 제압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요즘 한반도에 여름이 일찍 찾아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농작물은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데 비는 내리지 않고 폭염만 내리쬡니다. 

말라비틀어져가는 농작물과 애타는 농심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메르스와 45년 만의 최대가뭄이라는 시련 속에서 그대를 생각합니다. 

‘폭풍이 부는 들판에도 꽃은 피고/ 지진이 난 땅에도 샘은 솟고/ 초토흙 속에서도 풀은 솟아난다/ 오늘이 고달파도 내일이 있다.’ 라고 시인 바이런은 노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메르스와 가뭄이 힘들게 하더라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안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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