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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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5.06.1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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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심억수 <시인>

지난 주말 문학전문 월간지 문학저널 작가회에서 실시한 문학 기행을 다녀왔다. 오장환 문학관과 우암 송시열 선생의 유적지 화양계곡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오장환 문학관을 찾아가는 피반령 따라 구불구불 새로운 만남과 마주친다. 눈에 들어오는 모두가 새롭다. 비단 오늘뿐이겠는가. 어제 바라본 무심천의 풍경이 오늘과 다르고 아침마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매일 다르다. 이렇듯 늘 새로운 변화와 함께하면서도 일상의 틀 속에 가두어 놓고 잊고 지낸다. 

오장환 시인을 월북 작가라는 틀 속에 가두어 놓고 40년간 잊고 지냈다. 해금 조치가 풀리자 오장환 시인의 문학세계에 대한 평가와 자료들이 속속 발표되었다. 

월북시인으로는 처음 문학관과 생가가 복원되었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낯익은 시인의 초상들이 일행을 반긴다. 나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문단의 선각자인 박두진, 정지용, 이육사, 서정주, 김광균 시인의 초상 앞에서 옷깃을 여몄다. 오장환 시인은 휘문고 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정지용 시인과 사제지간의 인연이 되어 여러 시인과 교류하게 되었다. 

오장환 문학관에 근무하는 임선빈 수필가로부터 오장환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일행은 화양계곡으로 향하였다.

화양계곡을 가는 차창에 굽이굽이 밀려오는 푸른 햇살은 열다섯 살 오장환이 조선 문단에 발표한 시 「목욕간」의 시구를 주절주절 꿰어 내 마음으로 파고든다. 목욕탕에 가는 아저씨의 목적은 때를 씻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란 목욕탕 속의 아른한 정신에 도취하는 환상이 아닐 것이다. 나의 삶도 올바른 정신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화양계곡에 도착하였다. 

화양계곡은 아홉 개의 절경에 우암 송시열 선생의 북벌 애국 사상과 민족자존 정신이 깃든 곳이다. 우암 선생이 후학을 양성한 암서재, 효종 대왕이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자 새벽마다 한양을 향하여 엎드려 통고하였던 읍궁암, 송시열을 모신 화양서원,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신종과 임진왜란 때 군대를 보내 도와준 의종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인 만동묘, 흥선대원군이 초야에서 몸을 낮추고 지내던 시절 이곳에 들렀다가 말에서 내리지 않는다 하여 문지기한테 봉변을 당했던 하마소,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서원 철폐가 시작되었는데 가장 먼저 화양서원과 만동묘가 철퇴를 맞았다. 서원과 사당의 모든 건물이 헐리고 묘정비는 땅에 묻혔는데 광복 후 복원되었다. 화양계곡 맑은 물에 담긴 알싸한 사연 되새겨 보았다. 

오장환 시인 생가 복원과 문학관 건립 당시 월북 작가라 하여 일부의 반대가 있었다. 

또한 화양서원과 만동묘 복원 당시 당파적 편견과 오해, 식민지 사관의 상징으로 폄하되어 일부의 반대가 있었다. 

문학저널 작가회와 함께한 문학기행을 통하여 오장환 시인과 송시열 선생이 살아온 역사와 철학을 알게 되었다.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쓰이는 것이다. 그동안 역사의 틀 속에 가두었던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오장환 시인과 송시열 선생의 정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오장환 문학관과 송시열 선생의 유적지인 화양계곡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명소로 거듭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여행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고백하고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한 독백이다.

문학저널 작가회에서 실시한 문학기행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그동안 편견의 틀 속에 가두어 두었던 오장환 시인의 문학세계와 송시열 선생의 사상을 새롭게 알게 된 새로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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