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야 내려라
단비야 내려라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6.1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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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대지가 타들어 가고 있다. 

모내기를 마친 논들이 쩍쩍 갈라지고, 밭작물들은 생기를 잃은 채 고사되고 있다. 

농사의 젖줄인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거북등 같은 바닥을 들어낸 지 오래되었고, 용수의 최후의 보루인 댐들마저 역대 최저수위를 기록하며 상류 쪽엔 여기가 댐유역이었나 싶을 정도로 흉한 몰골을 하고 있다.

물 기근 사태가 가히 국가적 재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정성들여 농작물을 파종하고 모내기를 한 농부들은 입술이 바짝바짝 타고 애가 타 죽을 지경이다. 

예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 때문인데, 비는 내리지 않고 폭염만 내리쬐는 하늘이 참으로 야속하고 원망스러울 거다.

농심이 밝고 맑아야 좋은 농작물이 생산되고, 안전하고 풍요로운 식탁을 담보할 수 있기에 애타는 농심은 도·농 모두의 불행이다. 

극심한 가뭄현상은 세계적인 기상이변 탓이긴 하지만, 하늘이 단비를 내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고해성사를 한다. 

하늘이 단비를 허락하지 않는 건 사람들의 마음이 삭막해지고 날로 강퍅해져 측은지심이 발현되지 않아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측은지심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수돗물을 펑펑 쓰며 제 몸은 잘 씻으나, 정작 마음에 쌓인 분진은 씻으려 하지 않아서다. 

세월호로 상처받고, 메르스로 놀란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원망하며 서로 네 탓만 하고 있어서다. 

남이야 어찌되었든 나만 잘 살고 나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뻔뻔함이 도처에 널려있어서다.

국익과 공공선은 뒷전이고,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함몰된 정치권의 낯 뜨거운 공방 탓이다. 

앞에서는 사랑과 평화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자신의 이익과 승리를 위해 남몰래 칼을 가는 두 얼굴이 마주하고 있어서다.

중생구제나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보다 교세 확장에 더 열을 올리는 종교계의 탐욕과 위선 때문이다.

빈부의 양극화와 신분과 기회의 불평등이, 그리고 계층 간ㆍ세대 간 갈등이 날로 심화되어 사회적 정의가 서지 않아서다.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사람들 가슴속에 있는 온기를 식히고, 사람들 눈에 있는 눈물샘마저 말라붙게 한 탓이다.

그러므로 때맞춰 단비가 내리게 하려면 하늘을 웃게 해야 한다.

아마도 이리하면 하늘이 빙그레 웃을 것이다. 먼저 물의 고마움과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몸의 청결을 위해 수시로 샤워하듯, 마음의 때도 수시로 씻어내야 한다. 기도도 좋고, 참선도 좋고, 내 탓이라 고백하며 먼저 용서와 화해를 청해도 좋다.

힘없고 가난한 자와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에게 오만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배려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주머니를 채우려는 탐욕을 버리고, 십일조를 바치듯 빈자를 위해 가진 것을 조금씩 내놓아야 한다. 

정치권은 국익과 공공선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고, 종교인은 상처받은 영혼들의 위로와 축복을 위해 더욱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 

진실로 남을 사랑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면 하늘도 기뻐 웃으리라.

웃음을 잃은 농심을 위해 도시인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들의 소박한 웃음이 들녘의 메아리가 되도록 말이다.

우리 모두 측은지심을 가지고 신토불이 농산물을 사랑하고, 농촌 일손 돕기 등 농촌사랑운동에 적극 참여하자. 찌푸린 농심이 활짝 웃을 때까지.

그리하면 하늘도 감동해 단비를 내릴지니, 그대여 우리 그렇게 살자.

생명의 단비가 축복처럼 한반도에 주룩주룩 내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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