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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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0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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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두리의 가을 이야기
안 상 희 <수회초교 교사>

올해 수회초등학교로 옮겨 오면서 8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운동을 잘해 체육시간에 더더욱 멋진 윤찬이, 조용하지만 다른 친구를 위해 양보할 줄 아는 청운이, 웃음이 많아 역할극을 할 때 NG를 자주 내는 허허 아저씨 동현, 항상 즐거움이 가득한 멋쟁이 한별, 물로켓 만들기를 잘 하는 성윤이, 동네 이장 아저씨 역할을 잘하는 우리반 반장 예진, 친구들에게 착한 아이라 인정받는 류미, 큰 키만큼 마음도 넓은 지원이. 아래의 글은 8명의 아이들과 함께 한 무두리의 가을 이야기이다.

무두리에도 가을이 왔다. 하루는 교감 선생님께서 학교 밭 대추농사가 풍년이라며 간식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대추를 따먹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드디어 대추 따기 시작. 약간 빨간색이 나는 것이 달고 맛있다며 1학년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일러주셨다. 아이들은 자기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대추를 따기 시작했다. 금세 아이들 주머니는 대추로 가득했다. 아이들과 함께 대추 따는 일은 신나고 즐거웠다. 대추를 입에 넣고 씹으면 달콤한 맛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실컷 따먹고도 아직도 나뭇가지에 대추가 오종종 가득했다. 그날 오후에 가을걷이라며 학교에서는 대추 한 봉지씩을 나눠주셨다. 대추 한 봉지를 들고 집에 가는데 왜 그리도 기분이 좋던지. 아이들도 가을을 한 움큼씩 집으로 가져갔다.

토요일, 시골에 사는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있었다. 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찾아가는 토요 영어교실 수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시골이라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 온다고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다. 드디어 원어민 크리스 선생님과 도우미 선생님이 오셨다. 크리스 선생님은 아이들이 잘 아는 축구 선수 박지성 얘기를 하며 영국 맨체스터에서 오셨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였지만, 역시 아이들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크리스 선생님의 수업에 흠뻑 빠져들었다. What's this It's aan 란 주제로 그 날 수업을 이끌어 주셨다. 단어 맞추기 게임, 화살쏘기 게임 등 주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주셨다. 쉬는 시간 후 아이들과 선생님은 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에서 선생님은 오늘 배운 표현으로 새로운 게임 활동을 하였다.

선생님이 말하는 문장이 틀리면 제자리에서 'No!' 라고 하며 신체 표현을 하는 것이고, 맞으면 그것과 관련된 그림을 찾아 이동하는 것으로 맨 꼴찌로 간 아동은 탈락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활동하였다. 영어를 잘 모르는 아이들도 친구들을 따라 부담 없이 이리 저리 옮겨 다녔다. 온몸으로 영어 수업을 하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들과 선생님을 따라 다니며 활동하는 모습을 찍었다. 선생님과 아이들 뒤로 서 있는 운동장 은행나무에 노랑 가을이 물들고 있었다.

미술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환경을 활용한 표현하기를 하였다. 그동안 교실에서만 미술 수업을 해서 그런지 아이들은 바깥에서 수업을 한다고 하자 다들 좋아하였다. 아이들이 정한 주제는 '바다 속 풍경' 이었다. 친구들이 바다 풍경을 이야기 하자 그림을 잘 그리는 성윤이가 작은 종이에 스케치를 하였다. 그것을 보고 운동장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여자 아이들이 나무 막대기로 문어와 상어, 물고기를 그리는 동안 남자 아이 셋은 주전자에 물을 담아와 여자 친구들이 그린 그림 위로 물을 뿌렸다. 상어 이빨은 뾰족하게 모가 난 돌멩이를 주워다 하였고, 작은 물고기는 운동장에 떨어진 가래나무 잎을 가지고 표현하였다. 아이들은 문어가 상어보다 더 크다며 자기들 그림을 보고 웃었다. 비록 작은 실수들이 있긴 했지만, 이 날 아이들은 화가가 된 듯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의 활동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주었다. 그리고 작품을 완성한 후 무두리의 가을과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동현이가 어떻게 내 맘을 알았는지 은행잎을 귀 뒤에 꽂았다.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렸더니 여자 친구들이 동현이보고 은행잎 소녀라며 놀려댔다. 그래도 맘씨 좋은 허허 아저씨 동현이는 기분 좋게 웃기만 했다.

은행잎 하나에 모두 다 웃고 행복해 하는 아이들을 만난 이 곳. 그래서 무두리의 가을은 행복만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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