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공(奉公)하는 정신
봉공(奉公)하는 정신
  • 박숙희 <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5.06.0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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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그 서른다섯 번째 이야기는 ‘직지’ 하권 20장 규봉 종밀 선사(圭峯宗密禪師)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를 참조했음을 밝힌다.

규봉 종밀 선사가 말씀하셨다. “다만 비고 고요한 것(空寂)으로써 자체를 삼고 색신을 인정하지 마라. 그리고 신령스러운 지혜를 자기 마음으로 삼아 허망한 생각을 인식하지 마라. 만약 허망한 생각이 일어날지라도 모두 따라가지 아니하면 목숨이 미칠 때를 당해서 저절로 업이 능히 얽매이지 못하여 천상과 인간의 뜻을 따라 태어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늘 수행하는 중요한 절목이니라.”

법신이 바로 공적(空寂)이다. 마음의 본체는 본래 비고 고요한 것이라는 것이란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긴 가상이며 영구불변의 실체가 없어 고요하다는 것이겠다. 공적으로 자체를 삼으라는 것은 공적을 바로 자신으로 여기라는 것이다. 색신(色身)이라는 것은 허망하고 본래 없는 것이니까 법신 공적만을 자체로 여기고 색신을 자기 본체의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규봉 선사는 평소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주로 말했단다. 공적은 마음의 본체이고 영지는 마음의 본용(本用)이라고. 이는 신령스럽게 아는 영지를 자기 마음으로 여기고 분별을 일으키는 허망한 생각이 자기 마음인 줄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겠다. 이는 공적영지를 가장 근본으로 여기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야 헛된 생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세상의 여러 가지 선악의 업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단다. 그래서 업의 속박을 받지 않고 업을 벗어나서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천상의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이겠다.

천상에 태어나고 싶으면 천상에서 태어나고 인간 세상에 태어나고 싶으면 인간으로 태어나는 이렇게 자기 뜻대로 태어나는 것을 기탁(寄託)이라고 한단다.

요즈음 세상의 현실이 퍽 불안한 듯하다. 그래서 미래가 안 보이고 불안이 올가미처럼 자꾸 발목을 잡는 것 같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래에 매달린다고 불안이 없어지겠는가.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가져봄이 좋지 않겠는가.

이는 세상에 내 것은 없다는 것이겠다. 또한 인연 따라 나에게 머물고 있을 뿐. 좀 더 가진 사람은 많이, 덜 가진 사람은 적게 나눠야 한다는 것이겠다. 나눌 게 없는 사람은 없단다. 그리고 알리바바 그룹 마윈 회장도 사회가 나를 믿기 때문에 관리하라고 맡긴 것이라고 했듯이 그렇게 모두가 봉공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행복한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동국대학교 국제선센터 선원장 등을 맡아 간화선 대중화와 세계화에 노력하는 수불 스님도 “세상살이 어렵지만 작은 긍정의 씨앗을 더 큰 긍정으로 만드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나누어 사는 봉공하는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단다.

이는 규봉 선사 말씀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긴 가상이며 영구불변의 실체가 없어 고요한 것이니 즉 공적(空寂)’하고, 색신(色身)을 자기 본체의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과도 통하는 것이겠다. 이것 또한 봉공하는 정신의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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