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처럼 은혜로운 부모산
어버이처럼 은혜로운 부모산
  • 박상일 <역사학박사·청주문화원 부원장>
  • 승인 2015.06.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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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박상일 <역사학박사·청주문화원 부원장>
 
무심천과 우암산에 대한 글을 쓰고 나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산이 또 하나 있다. 부모산(父母山)이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청주에 들어오자면 맨 먼저 반겨주는 산이다. 

청주의 서쪽에 우뚝 솟은 부모산은 해발 231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주변에 미호천 유역에 발달한 구릉지와 충적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청주의 서쪽과 북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시야 확보가 매우 좋고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발달한 요충지에 해당된다. 

부모산 일대는 하복대와 대농지구가 개발되면서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백화점 등의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주거인구가 밀집된 신도시가 되었다. 따라서 이 일대의 많은 주민이 부모산을 등산하면서 심신을 수련하는 장소로 부각되었다. 

부모산은 야양산(爺孃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부모와 야양은 어버이를 뜻하는 동의어이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읍지에는 야양산이 청주 서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개인 묘비에도 야양산으로 표기된 것이 있다. 오늘날에는 부모산 동쪽 마을을 아양동(阿陽洞)이라 부르면서 그 뒤에 있는 부모산을 아양산(我養山)이라 칭하기도 한다.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문화재지』에는 부모산성을 ‘아양산성’이라 표기하였는데, 이러한 표기는 모두 ‘야양산’의 음이 와전된 것이다. 즉 ‘부모산’을 후대에 같은 의미임에도 좀 더 따뜻한 어버이의 숨결이 느껴지면서도 일반적이지 않고 어려운 한자인 ‘야양산’으로 바꾸어 표기하였을 뿐이다. 

부모산성은 조선 초기부터 기록에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모산성은 주의 서쪽 15리에 있다. 돌로 쌓았고, 둘레가 2,427척이며, 안에는 큰못이 있다. 지금은 폐성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후기에도 『여지도서』를 비롯한 모든 지리서에 똑같은 기록들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충청도읍지』 등의 읍지에는 ‘부모산은 주의 서쪽 15리에 있다. 돌로 쌓았으며, 안에 못이 있는데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낸다. 둘레는 2,427척이며 지금은 폐하였다’고 하여 산 정상부에 현존하는 모유정(母乳井) 또는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우물에서 기우제를 지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기우제단이 있었던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과연 명칭 그대로 어머니의 젓과 같은 우물이고, 신령스런 샘이었으니 비가 오지 않아 논밭이 타들어가고 곡식이 말라갈 때 이 샘에서 기우제를 지냈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부모와 같이 은혜로운 산으로 신성시되었을 것이다. 

부모산성은 둘레가 770m로 크지는 않으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삼국시대 성곽으로서 청주의 초기역사를 밝혀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현재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청주시에서는 국가사적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유정은 최근 발굴조사를 하여 옹달샘 같았던 우물이 직경이 9m이고 3단의 석축으로 이루어진 군사용 집수시설로 확인되었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으로 고을 백성들이 이 산성에 피난하였을 때 늘 안개가 끼어 있어서 산 아래의 평지를 노략하던 몽고군의 눈에 띄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따라서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또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성안에서 샘물이 솟아 살았으므로 그 은혜가 어버이와 같다 하여 부모산이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이 고장 출신 의병장 박춘무가 아들 동명과 함께 7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이 산성에서 대적하는데 군량과 식수가 떨어져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상봉에서 물이 솟아 생기를 얻고 왜적을 무찔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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