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를 가다
청계를 가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6.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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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파에 휩쓸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사람들은 문득 자신의 참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궁금해지고, 지금처럼 분주하게 사는 것이 과연 제대로 사는 것인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은 홀연히 낯선 곳으로 떠나 세사에 대한 잡념들을 잠시나마 잊고 세상의 이치를 관조하고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자 한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도 자신의 모습이 궁금해질 때면, 으레 찾는 곳이 있었다.

◈ 청계(靑溪)-왕유(王維; 699-761)

言入黃花川(언입황화천), ;황화천에 들어와
每逐靑溪水(매축청계수). ;푸른 개울물 쫓아간다
隨山將萬轉(수산장만전), ;산을 따라, 만 굽이로 나가고
趣途無百里(취도무백리). ;길을 걷는 것은 백 리를 가도 없네

聲喧亂石中(성훤난석중), ;흩어진 바위 돌에 물소리 요란하고

色靜深松里(색정심송리). ;깊은 소나무 고을, 경치는 고요하다.
漾漾泛菱荇(양양범능행), ;마름 풀은 둥둥 떠다니고
澄澄映葭葦(징징영가위). ;물에 비친 갈대는 맑기도 하구나
我心素已閑(아심소이한), ;내 마음 본래 한가로워
淸川澹如此(청천담여차). ;맑은 개울물 담박하기 내 마음 같구나
請留盤石上(청류반석상), ;청컨대 너른 바위에 앉아
垂釣將已矣(수조장이의). ;낚싯대 드리우고 이렇게 살리라.

※ 황화천(黃花川)과 청계(靑溪)는 둘 다 중국 섬서(陝西)성에 있는 물 이름이다. 실제 모습과 상관없이 이름만으로도 두 물은 이미지가 확연히 다르다. 황금(黃金)의 황(黃)으로 말미암아 전자가 세속의 부귀를 떠오르게 한다면, 후자는 청산(靑山)의 청(靑)으로 인해 탈속(脫俗)의 세상을 연상시킨다.

세상 사람들은 세속적 성공을 위해 황화천(黃花川)에 들어가라고 말을 하지만, 시인은 이것이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황화천(黃花川)에 간다고 말하고 나섰지만, 정작 발걸음이 향한 곳은 청계(靑溪)였다. 청계(靑溪)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실제 모습도 탈속을 갈구하는 시인의 성향에 맞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산을 따라 수도 없이 돌고 돌아가고, 평소 사람의 발길이 닿질 않아 백 리를 가도록 제대로 된 길을 걷는 일이 없을 정도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바위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요란하고, 소나무 고을의 기색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둥둥 떠다니는 마름 풀, 맑게 물에 비친 갈대는 청계의 변함없는 벗들이다.

시인은 청계의 맑은 물에서 한가로운 자신의 마음을 본다. 그리고 너른 바위에 자리 잡고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살리라고 다짐을 한다. 시인은 이처럼 청계에 가면 마음이 저절로 한가해지고 깨끗해지는 것이다.

세사에 마음이 복잡해지면, 어디든 훌쩍 떠나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욕심과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의 이치를 관조한다면, 그 인생은 한결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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