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종합소득세가 있었다고요?(2)
신라시대 종합소득세가 있었다고요?(2)
  • 김영미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 승인 2015.05.3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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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김영미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통일신라의 국가는 각 가호의 사람 수와 경제적 처지를 고려하여 가호를 9등급으로 구분하였고, 이에 따라 수치를 정했기에 이는 국가가 촌락마다 수치를 부과하기 위한 기준으로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이때 촌락의 수치에는 촌주가 직접 관여했으며 당시 촌주는 몇 개의 촌락을 자치적으로 다스리는 존재였고 이러한 문서를 작성할 때 직접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국가에서는 이러한 촌주의 직무수행 대가로 ‘촌주위답’의 조세를 면제해 주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해 통일신라 말기에 접어들어 촌주들은 호족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라시대의 민정문서는 그 당시 통일신라의 촌락지배와 수치체계 및 사회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아주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마을 조사는 3년마다 실시되는데 ‘촌주’라는 토착 세력이 조사를 담당한다. 

조사할 내용은 여러 항목으로 나뉠 수 있는데 역시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력에 대한 것이다. 

노동력이란 것은 성이나 다리를 건설하는 ‘부역’과 왕궁을 지키고 외적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군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일을 여자에게 시킬 수 없고 아무리 남자라고 해서 어린아이나 노인들에게 시킬 수 없기 때문에 국가에 부역의무를 지는 15세에서 57세까지의 남자 장정을 무엇보다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구는 남녀 각기 6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연령 하한은 16세였고 상한은 57세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자(조녀자)는 13~15세까지 조자라 하고 추자(추녀자)는 10~12세, 소자(소녀자)는 9세 이하이다. 제공(제모)은 58~59세, 노공(노모)은 60세 이상으로 짐작되고 있다. 

연령 구분에 대해서도 많은 학설이 제시된 만큼 정확한 연령층의 범위를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실제 나이를 속이거나 아예 숨어 버리는 사람들이 생겨서 골치아프게 된다. 왜냐하면 주민들은 될 수 있으면 부역에 동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장정들 파악과 관련하여 소와 말을 빼놓을 순 없다. 이 둘은 농사 및 교통·전쟁에 매우 유용한 가축들이다. 그래서 소와 말의 숫자를 하나의 오차도 없이 해야 한다.

다음은 삼베밭의 크기, 뽕나무, 잣나무, 호두나무의 숫자를 파악한다. 삼베는 베, 뽕나무는 비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기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며 잣과 호두는 이 지역의 특산물로 국가에 공물로 바쳐야하는 품목이다. 물론 논과 밭의 면적도 조사 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경작지에는 일반 백성의 땅 뿐만이 아니라 촌주나 관리, 그리고 관청 관할의 땅이 포함되었다.

요즘 통계청에서 몇 년마다 지역별로 인구센서스 조사라는 것을 하고 있다. 이것을 국가 주요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데 신라의 민정문서와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신라시대 한 촌락의 구체적인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민정문서는 당시 촌락의 경제 상황과 국가의 세무행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렇게 귀중한 자료가 국내에 없다는 것도 안타깝지만 사진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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