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고 단호하게
유연하고 단호하게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5.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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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유연하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때론 단호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범부에게는 로망일 뿐 쉽게 이룰 수 있는 삶이 아니었다.

이순을 지나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한심하기 그지없는 부실덩어리였다. 유연하게 살고자 했으나 경직되게 살았고 단호하게 살고자 했으나 우유부단하게 살았다. 유연한 사고를 하자 했으나 그릇된 선입감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유연하게 행하고자 했으나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 때론 단호하게 살고자 했으나 편안함과 익숙함에 길들여져 부끄럽게도 불의 앞에 주저했고 정의 앞에 머뭇거렸다. 

명색이 사내대장부이건만 수양버들처럼 줏대가 흔들렸고 돈과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어디 그뿐이랴.

매혹적인 여자 앞에 평정심을 잃었고 명예욕에 눈이 멀어 허명을 쫒기도 했다. 멍청하게 술과 여흥 앞에 절제력을 잃었고 약자 앞에 오만했었다.

단호히 배격해야 할 사조와 대상들에 적당히 타협했고 수시로 시류에 영합했으며 영혼 없는 빛바랜 삶을 살았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그저 앞만 보고 무작정 살아온 세월이었다. 

하여 이제부터라도 유연하고 단호하게 살려한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쇠락해지는 인생 후반부를 달리고 있어 마음만큼 몸이 따라줄지 걱정이 된다. 

당연히 유연성과 단호함도 떨어질 터 날로 어두침침해지는 노안처럼 퇴행을 막을 길이 없으니 그러하다. 

유연함의 사전적 의미는 딱딱하지 아니하고 부드러운 성질 또는 그런 정도이다. 

단호함의 사전적 의미는 결심이나 태도, 입장 따위가 과단성 있고 엄격함이다. 

둘 다 몸보다는 정신 상태에 방점이 있는 말이다.

정신도 몸을 따라가기 마련이어서 몸과 마음은 젊을수록 유연하고 늙을수록 경직된다. 사고의 유연성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 경험과 인식의 틀에 갇혀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35년여를 공직생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공직적 사고와 행동방식이 몸에 배였다. 군 출신에게 군인냄새가 나듯 교사 출신에게 선생풍모가 풍기듯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문제는 시대를 읽는 프레임이다. 매사를 공직의 잣대로 이해하고 분석한다든지, 그런 경직된 공직적 사고에 갇혀있으면 사회현상을 폭넓게 보지 못해 오류도 범하고 치열함도 떨어지게 된다.

독자들이 말한다. 필자의 글에서 공무원냄새가 나면 글이 밋밋해 재미가 없고 공무원냄새가 가시면 글에 단호함이 묻어나 재미있다고. 그럴 것이다. 글에도 그런 유연함과 단호함이 서려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두루뭉술한 글은 향기도 없고 감동도 없다. 그저 아까운 지면만 메울 뿐이다. 공직을 퇴직한지도 어느새 3년 5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충북도 출자출연기관에 근무했으므로 정부미도 일반미도 아닌 혼합미로 살아왔다. 참으로 어정쩡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으므로 내 칼럼에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았으리라. 

이제 한 달 후면 진정한 일반미로 거듭난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이다.

분명 침묵이 금이긴 하지만 단호해야 할 때 침묵하는 건 비겁이라고 펜이 속삭인다. 이제 그 펜의 속삭임에 부응하는 글을 쓰려한다. 비록 허리는 협착증으로 인해 구부정하고 머리는 반백이 되었지만 보다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리라.

설사 안티가 생기고 더러 원망하는 독자들이 생길지라도 단호해야 할 때 추상같이 단호할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현명한 그대여! 

그대만은 더욱 여유자적하게, 늘 푸른 오월처럼 사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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