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사촌이 땅을 사면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5.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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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 주지는 않고 오히려 질투하고 시기할 때 비유적으로 쓰는 말이다.

사촌은 아버지의 친형제 자매의 아들이나 딸로 종형제 간을 이른다. 혈연관계에서 친형제 다음으로 가까운 사이다.

땅은 지금도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재화이지만 농경사회에서는 가족의 생명줄로 부와 힘의 바로메타였다. 당연히 땅을 사면 가문의 경사요, 일생의 기쁨이었다. 그 땅을 먼 친척도 아니고 타성도 아닌 사촌이 사면 멀쩡한 배가 아픈 것이다.

의당 내일처럼 기뻐해야 될 일이건만 도대체 왜 배가 아픈 걸까?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은 쉽게 인정을 하고 받아들여도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것은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못나고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애써 아닌척 한다. 시기심이나 질투심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에 하나이며 누구에게나 발현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평소 타인에게 관대한 사람도, 명예욕이 없는 사람도 평소 사이좋게 지내던 친지나 경쟁자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겉으로는 축하하면서도 속으론 슬며시 시기심과 질투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독일어에도 잘 나가는 사람, 그것도 자신의 분야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불행해졌을 때 내심 쾌재를 부르게 되는 ‘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나보다 잘났거나 내가 차지해야할 대상을 선점한 타인에게 느끼는 시기심과 질투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문제는 이런 시기심과 질투심이 조절되지 못하고 정제되지 못해 열등감에 빠지거나 상대를 해코지하는 심지어 인명까지 살상하는 참극을 빚는데 있다.

요즘 ‘열등감 폭발’의 줄인 말인 ‘열폭’이 인터넷에 유행되고 있다. 타인의 성공이 반갑지 않은 천박한 자본주의 자율경쟁체제가 열폭자를 양산하고 있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를 강요받는 경쟁사회에서 타인의 성공은 자신의 뒤처짐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져 열등감이 폭발하는 것이다.

동료의 성공과 친구의 행복에 초초해지고 존재에 위협을 느끼는 열등감은 현대사회가 극복해야할 사회병리현상이다. 그렇다고 시기와 질투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더러는 시기와 질투가 오기를 불러일으키고 전의를 불태워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촉매역할도 한다.

‘사촌도 땅 샀는데 나라고 못할 소냐’하며 더욱 열심히 일하고 정진해 그 이상의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도 많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도 인간인데 어찌 시기와 질투가 없으랴.

그러하더라도 이젠 사촌이 땅을 사면 박수를 치자.

사촌이 못사는 것보다 잘 사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 집안에 돈 들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눠 낼 수 있고 어렵다고 손 내밀지 않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다. 그러니 사촌이 땅을 사면 더 이상 배 아파하지 말고 덩실덩실 춤도 추며 내일처럼 기뻐하자.

이웃사촌도 마찬가지다. 이웃 잘못 만나 불행해진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이웃이 잘 살아야 그대도 공동체도 두루 유익하다. 그러므로 이웃이 잘되고 잘나가면 흠집 내지 말고 내일처럼 기뻐하고 박수치자. 그리하면 그대도 운수대통하고 이웃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것인즉, 꼭 그리하라.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고 사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암울한 사회다.

사촌이 땅을 사도, 이웃이 잘 되어도 박수치며 기뻐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진정 좋은 사회다.

그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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