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중국 제일의 수향 마을 주장(周 莊)
<8> 중국 제일의 수향 마을 주장(周 莊)
  •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5.05.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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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중국 장강(長江) 문화의 향기를 찾아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아침 8시 10분쯤 역사의 도시 남경에서 출발해서 약 270㎞ 떨어져 있다는 중국 제일의 수향 마을 주장을 향해 달렸다. 오늘도 아침부터 반갑지 않은 비가 차창을 때리고 있어 우리를 조금은 우울하게 했다. 

빗길을 달려온 버스는 거의 12시쯤 주장에 도착했다. 곧바로 점심식사를 하고 주장 관광길에 올랐다. 우선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주장마을로 입장하는데 ‘眞豊澤國’이라는 현판이 붙은 거대한 문이 인상적이었다. 이 문을 통과하자 사람들로 메워진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고색창연한 점포가 즐비한 골목풍경 곳곳에 배어 있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시간을 거슬러 우리를 과거 속으로 데려다 주는 듯했다. 

줄지어 있는 이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골목길들이 명·청 시대의 고택과 골목길이란다.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 이 좁은 골목길 양편으로 공예품 가게, 떡 가게, 수예로 만들어진 각종 기념품 가게, 그림 가게, 음식점 등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 즐비한 골목에서 조금 벗어나자 수로가 나타났고 그 위로 아름다운 돌로 만든 반원형의 다리와 대들보형의 다리가 ‘ㄴ’자 형으로 두 개의 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쌍교라 일컫는 것으로, 주장의 상징과도 같이 유명한 다리라고 한다.

1984년 진일비가 그린 38점의 유화가 뉴욕에 전시되었는데 그중에서 ‘고향의 추억’이란 이름으로 출품된 명나라 때 만들어진 이 쌍교의 그림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져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이 그림이 유명해지면서 주장이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고 한다. 

쌍교에서 남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부안교가 있었다. 1355년에 만들어진 부안교는 다리와 누각이 같이 붙어 있는 강남 유일의 건축물로, 다리에 붙어 있는 교류(橋樓)는 오랫동안 찻집과 레스토랑, 상점으로 이용되고 있다는데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옛 중국인들의 풍요로운 주거형태를 엿보기 위하여 장청 심청도 방문했다. 그중에서도 심청은 오늘날의 주장이 있게 한 심만삼(沈万三)과 주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심만삼은 강남의 부호였던 아버지가 교역을 위해 주장으로 이주하면서 이곳에 터전을 잡게 되었다고 한다. 

심만삼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주장의 수로를 이용한 무역으로 주장을 작물과 비단, 수공업의 집산지로 발전시켰고 이런 공로로 그는 주장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심청은 1742년 그의 후손이 건축한 청대의 저택으로 2000㎡의 면적에 7채의 건물과 크고 작은 100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심청으로 들어서니 먼저 차방이 우리를 맞이했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가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외 수많은 방을 둘러보면서 전통적인 화려한 가구와 옥으로 만든 조각들, 심만삼의 좌상과 심만삼의 일대기를 그린 동판, 그리고 부엌의 각종 그릇 등 다양한 전시물을 볼 수 있었다. 

또 하나 특이하였던 것은 집 안뜰까지 운하가 연결되어 있어 집안에서 배를 타고 각처로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당시 부호들은 참으로 낭만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생활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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