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박사가 사랑한 수식
  •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5.05.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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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대부분의 문과생이 그러하듯 수학은 고등학교 시절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데 한몫을 한 과목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원리들과 씨름하다 지쳐 ‘아~ 부모님 어찌하여 제 머리를 이렇게 만들어 주셨나요?’ 한탄하며 뛰어난 수학적 감각을 지닌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했던 것 같다. 시간을 쏟고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았는지 학교를 졸업한 후 높은 수학 점수가 전혀 필요 없게 된 시기가 되었을 때도 수학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물론 본격적인 학습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와 똑같은 경로를 밟으며 머리에 쥐가 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도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오가와 요코 저) 을 읽다 보면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수학이 품고 있는 진짜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철학을 좋아하면서도 수학을 못했던 것은 내 머리가 나빠서라기보다 마음의 여유 없이 문제 풀이에만 급급했던 접근 방식 때문이라는 마음의 위안도 덤으로 얻고.
 책은 교통사고로 80분 동안만 기억할 수 있게 된 수학 교수, 그를 돌보기 위해 취업한 미혼모 가정부 그리고 그녀의 아들 셋 사이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유일한 친구가 숫자뿐인 박사,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그 자신도 미혼모가 된 화자, 생계를 위해 일하는 엄마 때문에 늘 혼자인 루트. 외로운 그들 사이에서 ‘수(數)’는 서로를 묶는 끈끈한 연결고리가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수 또는 수학의 원리에 리듬감을 주고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하는 박사의 감각에 몇 번씩 놀라며 무릎을 친다.
 
 √(루트) : “이걸 사용하면 무한한 숫자나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에도 번듯한 신분을 줄 수가 있지”
 i (허수) : “아주 조심성이 많지 않은 숫자라서 말이야. 눈에 띄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분명히 있어. 그리고 그 조그만 두 손으로 이 세계를 떠받들고 있지.”
 
 화자의 생일 220과 박사의 시계에 새겨진 숫자 284가 우애수임을 설명하면서 이 두 숫자는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멋진 인연이라며 즐거워하는 박사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수학과 철학이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도 보인다.
 “그럼 진정한 직선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 밖에 없어…. 물질이나 자연현상 또는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영원한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수학은 그 모습을 해명하고, 표현할 수 있어, 아무것도 그걸 방해할 수는 없지.”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 조합이 되지 않는 세 사람의 관계가 오해로 인해 깨질 위기에 처했을 때 박사는 친구가 된 그들의 관계를 오일러의 공식으로 표현한다.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가 e 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일본 서점 종사원들이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2004년 최고의 책으로 뽑았다고 한다. 수학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학생 또는 나처럼 수학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성인이 수학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싶을 때 문제 풀이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여유를 가지고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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