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인문학 - 5.18과 골 깊은 이분법의 사회
5월의 인문학 - 5.18과 골 깊은 이분법의 사회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05.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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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아직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남아 있는 이 땅에서 하필이면 오늘, 다시 돌아 온 5월18일. 올해로 서른다섯 번 째 맞이하는 5.18 민주화운동기념일입니다.

분명히 정부에 의해 법정기념일로 정해졌으나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5.18>은 여전히 가슴 아픈 지금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런 현대사의 질곡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을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총강 제1조는 위의 단 2항만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조항은 헌법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고쳐지지 않은 채 굳건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조항에 대한민국이 국가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체성을 오롯이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하고, 민주주의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일을 하는 공화제도를 채택한 나라라는 뜻이 헌법 제1조 1항에는 담겨 있습니다.

주권재민을 뜻하는 2항은 나라 주인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5.18>을 맞으며 갑자기 헌법 제1조 1,2항을 들먹이는 게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에서 너무도 당연하듯 이 대원칙을 잊고 있는 건 아닐까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제창을 할 수 없다는 정부부처의 입장이 나온 <님을 위한 행진곡>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는 지금 극단의 이분법적 구별이 난무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와 세습독재가 이어지는 도발적이고 폐쇄된 북한과 대치하고 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너무 쉽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가령 헌법에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공산주의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문에도 불구하고 주권과 기득권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국민은 결코 많지 않은 듯합니다.

혹시라도 주권과 기득권에 대한 굴종의 정도를 인식한다 해도 그런 모순을 깨우쳐 떨쳐내려는 의지는 좌빨 내지는 친북으로 매도되는 이분법에 의해 아주 쉽게 좌절되고 맙니다.

하기야 3대째 세습독재를 독행하고 있는 북한조차도 국호에 민주주의와 인민, 그리고 공화국을 사용하고 있으니 헛갈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입니다.

민주주의의 대척점에는 독재의 전제주의가,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로 대체될 수 있다는 학제적 논리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자꾸만 또 서로를 나누는 극단적인 이분법의 사회에서 건강한 희망은 그 힘을 얻기가 어렵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타는 목마름으로, 산 자여 따르라’는 더 노래가 깊은 가슴 속에서 더 낮고 무겁게 억눌려 나오는….

오늘은 고개 숙일 5월 18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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