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방식
저항의 방식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5.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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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최 준 <시인>

건네주었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스터리다. 돈이 증발하는 수증기라도 된다는 말인가. 사실 혹은 진실은 분명히 있을 것인데 이 사실과 진실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수증기 같은 것이 아닌가. 

정치는 어디까지나 현실이라고 힘주어 강조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의 그들은 허구인 소설을 쓴다. 편편마다 천편일률적인 구성과 빤한 결말이다. 왜 그럴까?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는데 그들은 주인공만 바꾸어 재탕 삼탕 우려먹는다. 베스트셀러를 꿈꾸는 거겠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은 흥미를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얼마 전에 있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보여준 독자들의 반응을 보았다면 그들은 반성해야 한다. 재보궐 선거라는 이벤트는 그들이 반성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였다. 열 명의 독자 중에서 책을 구입한 독자는 네 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 네 명 중에서 두 명의 독자가 고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여섯 명의 독자들은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출판사 이름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독자들에게 책 두 권 팔아먹은 쪽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고정 독자가 적어 판매에 실패한 쪽에서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승자도 패자도 대다수의 일반 독자들에게 외면 받는 이게 바로 그쪽 출판계의 현실이다. 독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출판업자들만 그걸 모르고 있는 건가. 아니, 모르고 있는 게 아니다. 정말 모르고 있다면 그들은 바보일 텐데 그들은 불행히도 바보는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다. 책을 구매하지 않는 게 독자들의 저항의 방식이라는 걸 당사자인 그들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구매의 권리를 포기한 독자들은 출판계가 흥하든 망하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 스스로가 정한 법이라는 보호망 아래서 아무런 반성도 없이 잘 먹고 잘 산다.

분서갱유. 책을 불살라버리고 싶지만 불행히도 독자들은 진시황과 같은 막강한 권력이 없다. 허구소설만 출판하는 그들의 작태를 이글거리며 분노만 삭일 따름이다. 그들은 독자들에게 당신들도 엄연한 우리 출판사의 비정규직 일원이며 우리 출판사 주식 한 주씩을 소유한 주주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수의 소액 주주들은 경영에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들의 망치질 하나로 모든 사안이 결정된다.

결국 칼자루를 쥔 갑은 출판권을 가진 그들이다. 4년이라는 기한의 출판사 경영권을 그들에게 일임한 독자들은 그들이 어떤 책을 출판하든 관여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들의 책을 구입하지 않는 소극적인 저항뿐이다. 

재미없는 소설 좀 제발 그만 출판하라고 아무리 외쳐 봐도 전임 편집자의 편집 행태를 그대로 복습하는 출판사의 책들은 소수 마니아의 구매력만으로 여전히 버틴다. 많은 독자들이 참신하고 새로운 출판 마인드를 가진 편집자를 갈구하지만 그들은 구태의연한 자신들의 출판권을 양도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세계적으로 책을 안 읽는 나라가 되었다고 그들은 한탄하지만 그들이 독자들의 삶에 진정으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책을 출판했어도 결과가 그러했을까. 독자들의 실망과 분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스레 허구소설을 써대는 3류 작가들로 버티는 출판사에 독자들은 계속해서 냉소와 조소의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관습적인 병폐들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출판사 사옥에 내걸린, 언젠가는 베스트셀러가 되리라는 허황한 광고판 속에다 가식적인 문구들을 양산해내는 그들의 웃음 뒤편에는 익명의 무수한 독자들이 던진 돌멩이들이 무덤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그 돌멩이들마저도 자신들을 향한 환호와 지지의 꽃송이들로 보이는 모양이다.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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