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가 뭐예요
편지가 뭐예요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5.05.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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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영숙 <시인>

선생님, 편지가 뭐예요?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달려와 다급하게 묻는다. 그날 백일장 글제가 ‘편지’였기 때문이다.

상대편에게 전하고 싶은 안부나 소식,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메일이나 문자도 편지 형식의 하나라고 덧붙였지만 뭔가 허전하다. 그랬더니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카톡’이나 ‘카카오스토리’도 편지가 되느냐고 묻는다. 

아이의 두 손에 들린 원고지 위로 하얀 벚꽃이 꽃비처럼 떨어진다. 그 와중에 꽃잎을 쏟을까 봐 연신 원고지를 오므리며 바라본다.

“원고지 빈칸 가득 박힌 이 꽃잎도 편지란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계절 편지이지, 하얀 원고지를 들고 깊은 생각에 잠긴 지금의 이 모습도 어른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편지가 될 수 있고.” 

제자리로 돌아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짓더니 무언가를 또박또박 적는다. 꽃보다 예쁜 그 모습에 이끌려 살짝 들여다보았다. 

벚꽃처럼 예쁜 우리 선생님/김윤미 선생님// 선생님의 꾸중은 웃는 거예요/울 엄마보다 더 착한 우리 선생님// 선생님이 지나간 자리마다 미소가 휘날려요/벚꽃처럼 환한 선생님의 얼굴이 방금 도착했어요// 

아이가 거론한 김윤미 선생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의 채무자로 만드는 요즘 보기 드문 교사이다. 학생들이나 동료들 사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늘 몸에 겸손과 배려가 배어 있다. 등하교 도우미 선생님, 야간 건물 관리자 아저씨, 방과 후 선생님들까지 일일이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추운 날이면 차 한 잔 끓여 전달하는 가슴이 난로인 사람이다. 운동장이나 도로변에 떨어진 학용품이 있으면 지나치지 않고 찾기 좋은 곳에 올려놓는 그야말로 천성이 반듯한 사람이다. 감사한 마음을 작게나마 표시하면 더 큰 감사로 되돌려주기 때문에 진심으로 우러난 감사조차 건네기가 어렵다. 

그 선생님과는 삼 년 전 방과 후 담당 부장과 방과 후 논술강사라는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천성이 온유하니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평상시 낮은 자들을 살피고 섬기는 모습은 테레사 수녀의 박애를 연상케 한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감사 또는 사은을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욕망 또는 노력으로 정의한다. 물론 사랑과 친절을 행할 때 되돌아오는 사랑을 기대하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사랑으로서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무력하며 불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선생님이 이번 스승의 날에 교육부 장관상을 받게 된 걸 보면 모든 일은 사필귀정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논술 수업을 하면서 교육철학으로 삼는 신조는 순자의 권학편이다. 소인은 학문을 귀로 익혀서 입술로 표현하지만, 군자는 학문을 귀로 익혀서 몸으로 표현한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좋은 이론과 진리도 교사 스스로 본이 되지 못하면 울리는 꽹과리이며 허공에 흩어진 공명이기 때문이다. 

어린 맹사성을 교화시킨 무명선사와 제자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던 페스탈로치도 그 누군가의 군자적 사랑이 생산해낸 되돌아온 사랑이다.

원고지에 선생님의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눌러 쓰는 아이, 어린 제자의 입가에 함박 미소를 드리운 그 선생님이야말로 무수한 사랑을 생산해 낼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고 교육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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