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과 올무
덫과 올무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5.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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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승범 <시인>

산을 다니다 보면 누군가 쳐놓은 덫이나 올무를 볼 수가 있습니다. 날카롭게 녹이 슨 덫은 한 번 밟으면 사람의 발목 정도는 쉽게 부숴놓을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녹까지 슬어 덫에 걸리면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올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짐승이 다니는 길목에 놓인 그것은 눈에 잘 띄지도 않아 별다른 도구나 손이 없는 짐승은 걸리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생명을 노리는 누군가가 그것을 놓았고 힘없는 짐승들은 당해낼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네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사이엔가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까지 갔다 와서 영어로 논문을 쓸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어도 정규직으로의 진입은 어렵습니다. 결혼을 앞둔 축들은 집 한 채 살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 방송에서는 끝없이 저출산의 위험성만 떠들고 있습니다. 등록금 또한 만만치 않아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학비를 충당할 수 있고 최소한도의 생활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중고등 학생들은 바늘 구멍의 시작인 대학 입시를 위해 다른 것에 눈 돌릴 여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점점 좁아지는 바늘귀를 통과하기 위해 저마다 분주함에 바쁩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쳐 놓은 덫이나 올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지고 사회 구조가 변화되었다고 해서 불과 십 수 년 사이에 젊은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진학과 취업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취업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선 개인 실력의 우열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가르는 누군가의 흉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조 자체가 문제라면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굶고 얻어터지더라도 잘못된 구조 자체를 고쳐내야 할 것입니다. 탄탄한 댐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진 우리의 모습에 박장(拍掌)치고 대소(大笑)할 누군가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성채에서 온갖 비리와 불법을 자행해도 성채를 무너트리고자 할 젊은 세대들이 없으니 쾌재를 부르며 유유자적 하겠지요. 

돌이켜보아 생각합니다. 우리의 발목에 채워진 올무와 덫은 어릴 때부터 채워져서 점점 옭아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덫은 점점 발목을 파고들고 올무는 계속 목을 조아옵니다. 

나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올무와 덫을 놓고 다니는 누군가를 찾아내어 징치해야 할 것입니다. 24시간 편의점 알바는 자기 발목을 물고 있는 덫을 빼낼 힘이 없고, 취업을 위해 좁은 바늘귀를 통과해야 하는 무수한 낙타들은 바늘귀가 커지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없고 나약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자기 발목과 목에 걸린 덫과 올무를 벗느라 애쓰고 있지만 결코 자력으로 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모두 내 올무와 덫을 걱정하기보다 올무와 덫을 놓은 누군가를 먼저 찾아내는 것이 우선 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목 조여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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