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역사의 도시 남경, 그리고 중화문(中華門)
<7> 역사의 도시 남경, 그리고 중화문(中華門)
  •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 관장>
  • 승인 2015.05.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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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중국 장강(長江) 문화의 향기를 찾아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 관장>

중산릉과 영곡사를 둘러보고 내려올 무렵에는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오늘 일정이 중화문 관람이었다. 

중국에서 꼭 봐야 할 것이 4개 있는데, ‘만리장성’ 북경의 자금성, ‘서안의 병마용’, 그리고 남경의 중화문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중화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밤의 야경도 볼만하다 하여 결국 시장기를 면하고 관람하기로 하고 우선 예약된 식당으로 향하였다. 

시장한 김에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중화문으로 갔다. 중화문이란 서울의 남대문과 같이 남경의 남쪽에 있는 정문인데, 그 길이가 128m, 폭이 118.5m, 총 면적이 1만5000㎡라고 한다.

과연 크고 웅장했다. 

이미 어둠이 찾아들었으나 성 주변은 밝은 조명이 밝히고 있어 색다른 감흥을 느끼게 했다. 

입구에 방문객을 위하여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성문의 유래를 기록한 입간판이 이채로웠다.

이 중화문은 처음에는 취보문이라고 불렀는데 모양새가 도자기 단지처럼 생겼다고 하여 옹성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세 개의 옹성에다 네 개의 권문이 관통하고 있었다. 기묘한 설계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군사적 고려 때문이라고 한다. 적이 바깥쪽 문을 뚫고 들어오면 문과 문 사이에 있는 아치형의 통로 위에서 천근 갑문을 내려 27개 장병동에 숨어 있던 삼천여 명의 군사들이 기습적으로 적군을 섬멸했다고 한다. 

옛날 전쟁의 승패는 성벽과 성문을 얼마나 잘 방어하는지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 천근 갑문은 없어졌고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원래 13개의 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중화문 한서문 청량문 화평문 등 4개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 중화문은 현재 남아 있는 성문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고 한다. 

명(明)대에 만들어진 이 남경 성벽은 1366년에 건설되기 시작해, 명나라 홍모 29년(1386년)에 완성된 고대도 성벽이라고 한다. 원래 총 길이가 33.676km로 도시를 둘러싼 성곽 중에서 규모 면에 있어서 세계 제일이며, 중화 민족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진귀한 역사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명나라 때 만들어진 이 성은 6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 전쟁 등 인류의 파괴로 많이 파손되어 지금은 3.743km 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에서도 특히 개방개혁 이후에 남경에 있는 이 고 성벽을 대규모로 복구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부 수리 복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벽 위로 오르면, 긴 길이 펼쳐지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벽을 실감할 수 있다는데 너무 늦어 성벽을 오를 수 없다 하여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아쉬움 속에 이 중화문을 떠나면서, 그래도 옛 명나라 때의 남경성의 규모와 위용을 느껴 보고, 전쟁 당시 군사들의 고함과 휘몰아쳐 달리던 말 발굽 소리를 잠깐이나마 들어보는 환청에 빠져 보았다. 이렇게 해서 중국 6대 고도중의 하나로 유명한 역사문화도시 남경의 일정을 모두 끝냈다. 휘황찬란한 도심의 야경 속에 은은한 역사의 향기를 느껴 보면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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