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목의 변(變)
고사목의 변(變)
  • 이은희 <수필가>
  • 승인 2015.05.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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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희 <수필가>

고사목이 눈에 든다. 

금방이라도 연둣빛 신록에 묻혀 나무줄기 여기저기에서 푸른 잎이 돋아날 것만 같다. 

구병산 팔백여 미터 산길을 오르는 중에 만난 허옇게 말라버린 소나무. 꼭 빛바랜 화석 같다. 

몸체가 굵고 하얘서 유난히 도드라진다. 시선은 나무의 줄기를 따라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지만, 신록에 가려 우듬지가 보이지 않는다. 

고사목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군중 속의 고독’이란 낱말이 뇌리를 스친다. 

혹여 이 나무가 바로 ‘고독의 실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고독도 깊으면 병이 되고, 관계 또한 과하면 병이 되지 않던가. 저 많은 나무 중에 누구와도 소통이 어려워 지쳐버린 나무인가. 

주변의 수종을 살펴보니 대부분 활엽수종이다. 참나무와 아기단풍, 산진달래 등속이다. 그 속에 죽은 나무는 소나무 한 그루뿐이다. 

죽은 나무를 바라보는 이마다 해석을 달리하리라. 나무의 사인을 물어보지 말자.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빈곤이 드러나듯, 빈곤의 뒷면에는 풍요가 득세하고 있지 않던가. 

봄빛의 향연이 벌어지는 숲 속이다. 연둣빛으로 물든 갖가지 나무들과 연분홍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그 자체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나무의 껍질은 벗겨지고 맨살로 반짝이는 소나무. 바로 풍요 속 빈곤의 실체가 아닐까 싶다. 

의미 찾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나 그리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나선 여인네는 죽은 소나무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산중에 흐드러진 산진달래 꽃에 홀려 감탄하느라 여념이 없다. 돌연 산 밑에서 몰려오는 알록달록 차려입은 등산가들 또한 고사목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산 정상을 향하여 빠르게 오른다.

고사목이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이렇게 기품이 넘치는 나무를 어디에서 만나랴. 주위 나무들을 보자. 나무 굵기로 보나 자태를 보나 아마도 살아 있을 때 주위 나무들의 시선을 독차지했을 것 같다. 푸름 속에서도 고사목으로 기죽지 않을 늠름한 자태가 그 증거이다. 

어찌 보면, 빈곤의 실체는 고사목이 아닌 나와 주변의 것들이다. 

위로를 받고자 숲에 든 내가 아닌가. 빈약한 사색과 관찰로 나무가 안타깝다고 애잔한 눈길을 보낸 건 잘못이다. 

고사목은 고독의 달인이자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베푸는 자선가다. 그의 몸집엔 벌레나 곤충들이 헤집어 놓아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나무는 죽어서도 공덕을 쌓는다. 뚫린 공간에서 실체 없는 바람도 쉬어가리라. 그의 몸을 빌린 자들도 그의 폭넓은 아량과 베풂을 알까. 나처럼 미욱하여 자신이 머문 공간만 바라보고 내면을 읽지 못한 탓이다. 

나무는 남다른 고독을 꿈꾸고 있다. 

하늘을 향하여 멋스러운 자태로 서 있는 나무. 고사목으로 꺾이지 않는 늘 푸른 소나무로, 아니 쓰러지지 않는 화석으로 숲 속에 늠름한 모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순간 줄기마다 솔잎이 무수히 돋아 성성한 나무로 주변 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새봄은 마술을 부린 양 나의 눈에 콩깍지를 씌운다. 멀쩡한 사람도 마구 흔들어 놓는 봄날의 변(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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