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의 구별
나와 남의 구별
  • 박숙희 <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5.05.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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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그 서른네 번째 이야기는 「직지」하권 15장 경청(鏡淸) 스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경청 스님께서 묻기를 “문밖에 무슨 소리냐?”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빗방울 소리입니다.” 경청 스님이 말하기를 “중생이 뒤바뀌어서 자기를 미 하여 물건에 따라가도다.”

또 그 스님에게 묻기를 “문밖에 무슨 소리냐?” 그 스님이 말하기를 “뱀이 개구리 무는 소리입니다.”경청 스님이 말하기를 “장차 중생이 괴로울 것이라고 말하려 했더니 다시 괴로운 중생이 있도다.”

자기 자신은 모르고 빗방울 소리라고 해서 빗방울에 따라가는 것을 사물에만 따라간다고 한 것이다.

『능엄경』에 “중생들은 본래 듣는 것은 미하고 소리를 따라간다.”는 말이 나온다. 또 중생들이 자기를 미 해서 물건에 따라가기 때문에 윤회를 한다고 한다.

부처님은 모든 물건을 굴리는데 중생들은 물건을 굴리지 못하고 물건에 굴림을 받는다. 즉 부처님은 轉物(전물)을 하고 중생들은 逐物(축물)을 한다는 것이겠다. 그래서 부처님은 覺悟(각오)를 하고 중생들은 輪廻(윤회)를 한단다.

경청 스님이 “밖에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묻는 것에 대해서 어떤 스님이 “뱀이 개구리를 무는 소리이다.”라고 대답했는데 그 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빗대어서 “중생의 고통이라고 여겼는데 다시 괴로운 중생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괴로운 중생이 또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겠다.

이는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은 그 자리에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본래 마음을 찾으라는 권유로 여겨봄이 어떨는지.

즉 천주교에서 사제서품, 주교서품, 추기경 서임 직후 이분들의 떨리는 그 첫 마음을 함께 하려는 믿음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이 안수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곤 하는 것. 특히 프랑스 남서부 루르드는 성모 발현 성지로 유명하다. 이곳 동굴 속에 있는 샘물이 병자를 치유해 준다는 ‘성수(聖水)로 이름나 순례 객들은 병에 이물을 담아가곤 한다는 것이 본래의 마음을 찾는 의미일 것이다.

국내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기도(祈禱)발’‘영(靈)발’이다. 대개의 종교에서는 기도 발을 탐탐하지 않게 생각한다. 기복 신앙적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지 않은가.

불교의 경우는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과 관음기도처 등이 그렇다.

이처럼 기복적이기는 하지만 공통점은 간절함일 것이다. 이 간절함은 인간이 기도하게 만드는 뿌리가 아닐는지.

경청 스님의 말씀 “중생의 고통이라고 여겼는데 다시 괴로운 중생이 있다.”고 하신 것과 성철 스님이 자신을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부처님 앞에 3000배를 하고 오라는 것을 생각해 반추하여 봄이 좋을 듯하다.

그래서 이를 통하여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은 그 자리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본래의 마음자리라는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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