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본다는 것 - 어린이 집 CCTV에 대한 단상
지켜본다는 것 - 어린이 집 CCTV에 대한 단상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05.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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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새벽 산책길마다 번번이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녀석이 있다.

푸른 논밭을 잠식하며 제멋대로 들어선 어느 공장에서 키우는 백구인데, 갑자기 짓는 바람에 그저 놀랄 지경이 아니라 심장과 간이 오그라드는 듯 충격을 받을 정도다.

어느 날에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녀석을 제압하기로 하고 가까이 다가가 미동도 없이 녀석과 눈싸움을 벌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녀석의 눈빛이 흔들리고 꼬리를 감추다가 결국 잔뜩 기가 죽어 제집으로 모습을 감추고 만다.

지켜본다는 것은 이처럼 사나운 개의 짓는 본능조차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부담스러운 일이다.

어린이 집 CCTV 설치에 관한 법률이 오랜 논란과 시비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무방비상태의 어린이들을 어른들의 폭력으로 보호하겠다는, 즉 국가가 호들갑을 떠는 ‘안전’을 위함이 그 설치 목적일터인데 꺼림칙하기 그지없다.

물론 일부 극단의 보육교사들이 대항할 힘을 키우지 못한 어린이들을 학대하는 일이 그로인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느 정도 타당하다.

적어도 CCTV 카메라가 ‘지켜보는’ 범위에서는 가학행위를 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악한 인간들은 기필코 사각지대를 찾아 낼 것이며, 작동을 멈추거나 하는 방법을 써서라도 못된 짓을 또다시 저지를 것이다. 폭력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결코 그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결국 CCTV가 어린이 안전의 만능 해결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명약관화한 진실에 해당된다.

문제는 본질에 있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그런 성향이 있는 인물을 가려내 어린이 집 근처에는 접근조차 못하게 하면 되고, 훌륭한 인성을 지닌 보육교사를 모시면 된다.

그러려면 처우를 개선하는 일이 우선인데, 열악한 그들의 고용 안정성이나 급여 및 복지 수준, 즉 사람에 대한 일들에는 도대체 관심이 없다.

기계의 감시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창의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보육교사가 됐든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어린이들이 됐든 자유로움에서 창의력은 더욱 키울 수 있는 것이고, 그런 키움을 통해 나라의 미래 가능성은 달라질 수 있다.

CCTV는 closed-circuit tel evision, 우리말로는 폐쇄회로 텔레비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 ‘닫혀 있음’과 ‘갇혀 있음’이 가장 큰 특징이니 거기에서 자유는 사치다.

하기야 우리가 언제 제대로 사람다운 자유를 누린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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