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바퀴벌레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05.0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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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시다. 아마도 요즘 가장 많이 애용되는 시같다. 술집에서도, 골목에서도 이 시를 만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나?’ 

우리 모두가 ‘누구에겐가 뜨거운 사람’이고 싶기 때문에 이 시가 애송되는 것이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 누구는 여인일 수도, 사업일 수도, 조국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는 나에게는 한용운의 ‘님’으로 다가온다. 우리 모두 님 하나씩은 키운다. 

그런데 그 시를 떠올릴 때마다 패러디되는 생각이 참 고약하다. 시작한다. ‘바퀴벌레 함부로 죽이지 마라. 너는 그보다 이 지구상에서 오래 산 종족이더냐?’ 

웃기겠지만, 사실이다. 바퀴벌레는 인류보다 훨씬 지구상에 먼저 태어났고, 아마도 인류보다 훨씬 오래 지구상에서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인류보다 먼저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연구를 빌리는 것이고, 인류보다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험난한 지구의 역사를 이겨내고 그들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추론에 바탕한다.

바퀴벌레 형님은 빙하기도 이겨냈고, 혼자 남으면 양성이 아니라 무성생식도 한다. 죽었다고 죽은 것이 아니라는 지식은 바퀴벌레 박멸 광고를 통해서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알은 늘 살아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바퀴벌레를 죽일 때마다 생각한다.-내가 바퀴벌레를 인류의 형님이라고 한다고 해서 죽이지 않을 것 같다는 추측은 금물이다. 죽이기는 죽인다. 그러나 죽이면서 위대한 그를 위해 멈칫한다. ‘미안하다. 그러나 이 시대는 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과장해보자. 비슷한 이야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라는 소설에서 나온다. ‘그대가 예수인 줄 알지만, 이 시대는 그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대심문관)고. 

오늘날 바퀴벌레는 인류가 혐오하는 곤충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전에 유행한 영화의 원작인 만화 ‘설국열차’에서도 미래의 식량으로 나온다. 곤충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분명 바퀴벌레일 것이다. 그들은 장차 인류를 구원할 식량일지도 모른다. 영화 ‘빠삐용’에서도 독방에 갇힌 주인공은 먹을 것이 모자라 벌레를 잡아먹는다. 그것도 분명 바퀴벌레다.

우리는 곤충을 먹어왔다. 메뚜기가 바로 그것인데, 젊은 층은 잘 이해 못하겠지만, 튀긴 메뚜기는 정말 맛있었다. 고소한 것이 없던 시절, 기름에 튀긴 메뚜기는 환영받던 반찬이었다. 메뚜기 볶은 음식이 가정의 식탁에서 사라지고 나서 강남의 룸싸롱에서 고급 안주로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인이 즐겨 찾는 벌레는 다름 아닌 번데기다.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암모니아 냄새가 고약한 홍어까지 먹으면서도 번데기를 못 먹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보았다. 그들에게 번데기는 우리에게 바퀴벌레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바퀴벌레는 우리보다 먼저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노래인 ‘라 쿠카라차’(La Cucaracha)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바로 바퀴벌레다. 

이 노래는 1910년 100만 명이 희생된 멕시코 농민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의 땅이 대지주에게 빼앗긴 농민은 의적 판쵸 비아(Pancho Villa) 아래 뭉쳤다. ‘술을 먹되, 취하지 마라. 사랑을 하되, 감정에 빠지지 마라. 훔치되, 부자의 것만 건드려라.’ 그리고 살아남자, 바퀴벌레처럼.

나는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를 남쪽 나라에서 많이 보았다. 날자, 날자꾸나. 라 쿠카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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