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또 하나의 가족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5.05.05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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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시민기자>

잠자리에 든 밤늦은 시간에 가냘픈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가보니 거실 창밖에서 검둥이가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며 빈 밥그릇 옆에 앉아 있다. 

검둥이는 들 고양이다. 덩치는 제법 큰 편인데 네 발과 코끝, 그리고 입 주위에서 목덜미로 이어진 배 밑 부분만 흰색이고 나머지는 짙은 검정색이라서 검둥이라고 이름 붙였다. 검둥이가 우리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일 년 남짓 되었다. 처음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드나들며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뒤져 먹었다. 고양이가 다녀가면 쓰레기봉투는 찢기고 음식물은 이리저리 흩어져 지저분했다. 음식물쓰레기를 통에 담아 뚜껑을 덮어 놓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써가며 고양이와 신경전을 벌였지만 고양이들을 당해내기 어려워 쓰레기통 주변은 항상 지저분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차라리 먹이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음식물 찌꺼기를 주다가 고양이 사료를 사서 함께 주기 시작했다. 먹이를 주고 돌아서면 어느 틈에 다 먹어치웠는지 먹이통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고양이들과 신경전을 벌일 일도 사라졌다. 그러자 차츰 어떤 고양이들이 오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꺼림칙했던 고양이들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관찰해본 결과 세 마리 정도가 들락거렸다. 새끼를 밴 누런색의 암고양이와 얼룩무늬 새끼고양이, 그리고 검둥이였다. 눈 내리는 날에는 세 마리 고양이가 눈 위에 가지런한 발자국을 남기며 다녀가곤 했다. 

겨울 끝 무렵부터 한동안 보이지 않던 검둥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걸음걸이는 뒤뚱거렸고, 매끄러웠던 털은 푸석푸석해진 초췌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왼쪽 뒷발목이 잘려있었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먹이통에 접근할 때는 낮은 포복을 하듯 배를 땅에 대고 주변을 살피면서 다가왔고, 먹이를 앞에 두고도 한동안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덩치가 훨씬 작은 새끼 고양이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신체적 결함 때문에 냉엄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밀려난 검둥이의 비애가 그대로 느껴졌다. 

먹이활동이 부자유스러워서인지 검둥이는 전보다 더 자주 찾아왔다. 그런 검둥이를 보면서 먹이를 더욱 정성스럽게 챙겨주게 되었다. 차츰 검둥이와 마주치는 시간이 많아졌다. 먹이를 주러 나가면 멀리 달아났다가 한참 후에 나타났던 검둥이가 사람을 피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더니 언제부턴가는 아예 피하지 않고 먹이통 옆에 앉아 기다렸다. 그렇게 익숙해지더니 해가 따뜻하게 내리쬐는 날에는 거실 문 앞에 앉아 낮잠을 자기도 하고, 먹이통이 비어있으면 먹이를 달라고 가냘픈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지나면 검둥이를 집안에 들여놓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검둥이 스스로 제집인양 들락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고양이를 끔찍이 싫어했던 내가 이젠 검둥이가 오지 않는 날은 무슨 일이 있나 종일 마음이 쓰이고, 어떤 음식은 가리고 안 먹는지도 살펴 가며 챙겨 주게 되었다. 검둥이는 이제 내가 챙겨주고 돌봐야할 또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이다. 먹이를 준비해 놓고 검둥이를 기다리는 이 시간 무심결에 나태주 시인의 시가 읊조려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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