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장다운 패장이 아쉽다
패장다운 패장이 아쉽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05.0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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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측근이 이번 재보선 패배를 놓고 “총선을 앞두고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라고 자평했다고 한다. 당내에서는 “보약이 될 수도 있다”는 자위의 목소리도 나돈다. 예방주사로 앞으로 더 큰 패배를 당해도 견딜 수있는 내성을 키웠다는 자학의 표현인지는 몰라도 한심한 현실인식이요, ‘아전인수’의 결정판이다.

이번 선거는 임기 1년짜리 의원 4명을 뽑는 재보선에 불과했지만 4대 0 완패라는 상징성보다 함축한 내용에서 야당에 치명상을 안겼다. 바로 호남 표심의 이반이 노골화 됐다는 점이다. 광주서는 20%포인트 차로 완패했고 서울의 호남으로 통해온 관악을에서도 득표율 격차가 10%포인트에 육박했다. 야권의 분열이 변명거리로 등장하지만 관악을은 선거때마다 복수의 야권 후보들이 각축하면서도 지난 26년간 여당에 내주지 않았던 곳이다. 

호남이라는 야당의 교두보가 속절없이 무너지며 당 밖에서는 보수 장기집권의 서막이 올랐다는 전망이 나도는 판인데도 새정치연합의 반응은 태평하다. “호남이 회초리를 들었을 뿐이지 우리를 버린 것은 아니다”는 위안이 통렬한 반성을 대신하는 모양새다. 호남 유권자들이 야당에 회초리를 든 것은 이번이 아니라 지난해 7월 재보선에서였다.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곡성에 새누리당 깃발을 꽃았을 때였다. 보다 정확히는 이정현이 광주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39.7%의 지지율을 올리며 야당의 턱밑까지 치고올라왔던 지난 19대 총선에 이미 경고장을 받았다고 봐야한다. 

옐로우카드는 받을 만큼 받았던 셈이니 이번에 받은 카드는 빨간색으로 간주돼야 마땅하다. 예방주사나 보약, 회초리 따위를 동원해 왜곡할 수 없는 명백한 퇴장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도 당에서 절박감이나 위기감이 감지되지 않는 것은 패장의 길을 외면하는 문재인 대표 탓이 크다. 

절대적 호재들을 갖고도 역공으로 무너진 미숙한 전략, 야권의 자중지란 등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패인은 무수하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문 대표의 책임에서 벗어날 것이 없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광주에 살다시피하며 호남 사수에 올인했다. 현지에서는 문재인과 천정배의 싸움이라고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는 야당의 본진에서조차 일개 계파를 거느리는 수장에 불과할 뿐 야권을 두루 아우를 지도자로 인정받는데 실패했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던 문대표다. 경쟁력에서 그 못지않았던 안철수의 양보를 받았고 진보진영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시종 유리한 판세를 누렸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더 이상 기회와 자리에 연연한다면 그의 행색은 정동영처럼 구차해질 뿐이다. 

보수는 지지 정당의 허물을 비판은 해도 때만 되면 품는다. 진보는 비판을 넘어 보이콧으로 응분의 대가를 안기기 일쑤다. 그래서 야권에서는 대한민국 진보는 ‘발’보다 ‘말’로 참정권을 행사한다는 푸념이 터진다. 그만큼 진보의 표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야당이 도덕성 등 정치적 덕목은 물론 소소한 명분과 전략에서조차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여권 한복판을 덮친 ‘성완종 리스트’가 야당 발목까지 잡은 대목에서 보듯 ‘오십보냐, 백보냐’의 시비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절대적 개혁과 쇄신이 실패를 거듭한 리더십을 통해 구현되기는 어렵다. 

문 대표는 오늘 광주를 방문해 민심을 듣고 당 쇄신책을 모색하겠다고 한다. 호남의 민심은 이번 선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또 무엇을 듣겠다는 말인지 궁금하다. 그는 광주에서 귀를 열 것이 아니라 지역 유권자들이 내린 명령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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