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손님
5월의 손님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5.0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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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초록 바람이 부는 5월이 문을 열었다. 유리창 안으로 초록이 가득하다. 살랑살랑 남실바람이 연한 단풍잎에 분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우리 집엔 낯선 손님이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는지 민첩하게 날고 있다. 콩새 부부다. 알을 낳으려나 보다.

한 주가 시작되던 날이다. 현관 옆이 시원해 겨울 지나 싹이 튼 마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대문 지붕 아래 철 대문 난간에서 콩새 한쌍이 지저귄다. ‘찌’ ‘찌’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 애원하는 것 같다. 일어서서 바라보자 날쌔게 몸을 피한다. 한참 후엔 입에 무엇인가 물고 다시 날아와 앉아있다. 아마 알 낳을 곳을 마련 중인 듯했다. 어딘지 자세히 모르지만 내 눈길은 자연 그곳으로 향한다. 우리 집에 집을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벽돌집이지만 현관 입구에 주목과 단풍나무도 작은 숲을 이루었다. 새집 보금자리로는 아주 알맞은 곳이다.

문득 초임교사 시절이 생각난다. 지역교육청에서 발령난 곳은 아주 산골였다. 막상 준비해 간 살림살이를 정리해서 살 곳이 마땅치 않았다. 6월 초라 빈방들은 모두 담뱃잎을 말린 후 보관실로 활용해 난감했다. 그리고 방세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먼저 부임해 계신 분의 방에서 함께 한달 동안 하숙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산촌생활은 머물 곳을 찾느라 한달 동안 헤맸다. 아침형인 내겐 아주 답답하고 지루한 아침이 연속됐다. 출근 시간에 맞추어 준비하는 하숙집 주인의 식사 준비, 기다리려니 몸살이 난다. 어서 벗어나 내가 준비해 간 도구로 밥을 지어먹고 싶었다. 한달이 지나서 학부형은 혼자 살기에 알맞은 방을 선뜻 내 주셨다. 그 작은 뒷방에서 내 산촌 생활은 시작됐다.

콩새를 보고 있으니 오래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작은 새이지만 왠지 가련해 보이기도 했다. 오늘도 여전히 입에 작은 것을 물고 찌찌 거리며 왔다 갔다 한다. 저녁을 먹고 소리 나는 곳을 찾으려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앞집의 키 큰 모과나무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여전히 나는데 방향을 알 수 없다. 대문 열고 들어올 때 어둠이 내리는 주목 밑에서 날렵한 새 한 마리가 놀라 달아난다. 아마 잠을 자려 했던 것은 아닐까. 온통 내 머릿속은 5월의 손님 콩새에게 집중이 되어 있다. 콩새는 도시의 공원이나 정원, 교외의 소나무 숲, 우거진 활엽수와 침엽수가 함께 자라는 숲에 찾아오는 겨울 철새다. 겨울에는 작은 무리를 이루거나 혼자 생활하는 때도 있다.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지만 때로는 땅 위를 걸어다니면서 씨앗을 먹기도 한다. 둥지는 키 작은 나뭇가지 위에 마른 풀이나 마른 줄기 덩굴 등을 이용해서 밥그릇 모양으로 만든다. 알을 낳는 시기는 5~6월이며 1년에 2회 번식하고 3~6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마침 우리 현관 입구에 주목과 단풍나무는 아담한 키에 둥지를 틀기엔 참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단점은 드나듦이 많은 곳이라 새가 마음 놓고 살기에는 불안한 곳이다. 지난번에 내가 그 입구에서 마늘을 다듬고 있을 때 콩새가 오랫동안 대문 난간에 앉아있던 것은 그곳을 바라보며 비켜 주기를 바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도 자리를 피해 주고 현관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애처로워 보여 오래전 학부형이 선뜻 방을 내 주신 것처럼 나도 콩새에게 보금자리를 꾸밀 수 있게 내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콩새가 그곳에 둥지를 틀고 태어날 아기 새와 함께 사는 푸른 5월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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