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신념
아베의 신념
  • 최 준 <시인>
  • 승인 2015.04.3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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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최 준 <시인>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은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나라들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이들 두 나라는 전후에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정리하는 데 있어서는 판이한 시각을 가졌다. 

독일은 전범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철저히 단죄했고 그 단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실천을 앞세운 독일의 뼈아픈 반성은 세계인들에게 진심어린 행위로 인식되었다. 반면에 일본은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원자폭탄으로 종료한 전승국 미국으로부터 면죄받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당시의 국제적인 역학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속내가 반영된 모종의 혜택(?)이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예로부터 대륙 진출을 꿈꾸는 섬나라 일본의 표적이 되어 무수한 고통을 당해왔다. 양국의 적의는 하도 오래 누적되어 온 것이어서 화해가 불가능한 것으로까지 여겨진다. 상충되는 이런저런 이해들로 얽히고 설킨 감정은 정치적인 제스처만으로는 풀어지지 않을 듯하다. 

세계대전 전범들의 무덤인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입장은 그들이 죄를 짓기는 했어도 자신들의 조상이니 나름의 예를 갖추는 거라는 이해가 가능할 것도 같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를 선조로 둔 우리의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정작 문제는 일본 현 총리인 아베의 행보다. 아베가 보여주는 일련의 언행들은 마치 일본을 세계대전 당시로 되돌리려는 노력처럼 여겨진다. 일본인들에게 아베는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애국자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웃나라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는 분명 국제적인 문젯거리를 양산해내는 장본인이다. 

국무총리가 취임 두 달여 만에 낙마하고 대통령이 멀고 먼 남미를 순방하고 돌아오는 동안 그는 은혜의 나라 미국으로 날아갔다. 자본주의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이유도 정당화 한다. 이를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마를 맞댄 것 뿐이다. 그들의 인식은 하나로 모아진다. 서로 윈―윈 하자는 의도다. 미국은 이제는 옛 소련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일본을 이용해야 하고 일본은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을 상대하려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은 지구의 수호천사가 아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과거가 현실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다는 견해는 일본과 미국을 하나의 통로로 걸어가게 하는 동인(動因)이다. 그들은 한반도의 긴장과 내분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속내도 일치한다. 두 나라 모두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분단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들이기도 하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막강한 위치에 서게 된 미국도, 과거사라는 등짐을 지고 이를 역이용하려는 일본도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나 우군은 아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될 수도 있다. 이게 역사가 주는 교훈이고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다.

아베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최우선의 친화국이 될 수 없다. 아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조건적인 적의도 위험하다. 일본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베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통일을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베가 꿈꾸는 건 오직 자신의 조국인 일본의 번영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외부의 적의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아베가 문제라면 그게 문제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우리에게 대를 이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조상의 죄과에 대해 자신이 반성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파시즘적 신념이다. 아베는 그래서 위험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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