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여 안녕
사월이여 안녕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4.2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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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2015년 4월 마지막 날이다.

이제 꽃피고 새우는 아름다운 사월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한다.

사월의 문을 열었던 화려한 벚꽃과 목련이 일찍 지고, 한동안 사월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진달래 개나리꽃이 떠나자, 영산홍이 마지막 사월을 지키고 있다.

꽃은 아름답게 만개한 후 잎을 무성케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데, 요즘 인간사와 세상사는 아름답기는커녕 추하고 혼탁하기 그지없다. 

세월호 1주기인 4.16을 맞았건만 치유와 거듭남은 고사하고, 아직도 좌와 우, 보수와 진보가 한 치의 양보 없이 으르렁거리고 있고, 민주항쟁의 상징인 4.19혁명 55주년 기념식도 정부 따로 야당 따로 하는 기막힌 나라에 우리가 산다. 

어디 그뿐인가?

금년 사월은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나라가 쑥밭이 되었다.

해외자원개발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그의 옷가지에서 8인의 이름과 억대의 금액이 적힌 메모쪽지가 나왔기 때문이다.

현직 국무총리 그리고 전ㆍ현직 대통령비서실장과 홍준표 경남지사를 비롯한 박근혜정부 실세 8인의 이름이 적힌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부패척결을 외쳤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자신의 비리혐의로 사퇴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졌다. 

고인이 노무현정권 때 두 번의 사면복권을 받은 전력이 있어 수사의 불똥이 어디까지 번질지 정치권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기에 4.29보선까지 있었으니 유ㆍ불리를 따지는 여야의 셈법이 참으로 복잡하고 궁색했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허탈했고, 부끄러웠다.

고비용 저효율의 경선시스템, 돈에 매수당하는 정치, 검은 돈에 자유롭지 못한 정권, 돈이면 다되는 황금만능주의가 정경유착을 만들고, 제2ㆍ제3의 성완종과 비리정치인을 양산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경유착은 사회 전반에 부실과 불공정과 좌절을 가져온다.

돌이켜 보니 금년 사월은 분열의 사월, 혼돈의 사월, 수치의 사월이었다.

날씨도 몹시 심술궂었다.

꽃을 시샘이라도 하듯 개화기에 비를 뿌려 꽃구경을 할 겨를도 없이 벚꽃과 목련을 낙화시키더니, 어느 날은 몹시 추웠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더위를 몰고 와 생태계를 곤혹스럽게 했다.

봄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지는 기상변화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아무튼 사월은 봄의 정수다. 가장 봄다운 달이며, 봄답게 기능하는 달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월은 정말 잔인한 달이 된다.

생명이 약동하고, 꿈과 희망이 샘솟고, 좌절이 도전으로, 무정이 사랑으로, 허약함이 강인함으로 변해야 진정한 사월이다.

불의에 항거하고, 거짓을 배격하고, 정의와 진실을 꽃피우는 달 사월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그대여! 

아마도 그대도 사월 내내 적잖이 실망하고 분노했으리라. 그래서 아직도 움츠렸던 겨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사월을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여 내일이면 벌써 오월이다.

털어내자. 겨울이불을 햇빛에 말리고 털어내듯,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도 봄 햇살에 말리고 털어내자.

미움도 집착도 자질구레한 욕심도 훌훌 털어내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필자의 졸시 ‘사월에게’를 그대에게 바친다.

‘그녀는/ 충분하다고/ 속삭였다/ 나는/ 여분이 싫다고/ 투덜거렸다/ 그녀는/ 내가/ 너무 서두른다고 했다/ 나는/ 꽃이/ 곧 떨어진다고 했다’ 

그렇다.

벚꽃과 목련과 진달래 개나리는 내년 사월에도 어김없이 피련만, 우리네 청춘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 어찌하랴.

그대여, 이제 더 이상 꽃이 떨어진다고 서러워말자.

낙화도 아름답고, 낙화도 의미가 되나니. 

사월이여 아픔이여,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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