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콘트롤타워
재난 콘트롤타워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5.04.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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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시민기자>

오늘 아침, 네팔의 지진참사 뉴스를 검색하던 중 한 장의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 여인이 죽은 이의 손을 잡고 있는 부분이 크로즈업된 사진인데 ‘차마 놓지 못하는 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수많은 사진 중에서 이 사진에 눈길이 멈춘 것은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과 재난 앞에서 무력한 국가,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규모 7.8의 강진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대표적 관광지 포카라를 강타했다. 

카트만두의 주택 70%와 네팔의 관광자원인 세계문화유산들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지금까지 파악된 사망자 수만도 4천명이 넘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주검으로 발견될지 모를 일이다. 

지진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가 인명구조와 이재민 돕기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발빠르게 1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네팔의 지진은 한 달 전에 예견되었다. 그리고 1주일 전에는 50여 명의 지진학자들이 카트만두에 모여 네팔 지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비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진을 막을 수는 없어도 사전에 대비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없었을까? 

‘관저의 100시간’은 일본정부의 재난사고 대처 기록이다.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재난 콘트롤타워였던 일본 총리관저에서 100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을 아사히신문 기무라 히데아키 기자가 재구성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경제대국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로 원전이 폭발할 때 까지 사고에 대처하는 모습이 너무 기가 막혔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진도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매뉴얼에 따라 관련부처 장관들이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로 모여들었다. 

3시 14분 재해대책기본법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긴급재해대책본부’가 세워졌다. 3시 27분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3시 35분 2차 쓰나미가 덮친 후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가 전원을 상실했다. 이후 불과 4분 만에 원전 5기가 위기를 맞았다. 

총리는 관방장관에게 전체 피해대책을 맡기고 자신은 원전사고에만 매달렸다. 

방사능 누출이 빚어낼 대 참사를 막기 위해 뜬눈으로 지휘하는 총리가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잘 모르겠습니다’ 였다. 

대책본부에 있던 한 관료는 원전사고 대책이 공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네축구 같았다고 말했다. 

방사능 피난 대책에 SPEEDI는 활용되지 못했다. 방출된 방사능물질의 비산범위를 예측하여 주민을 신속히 대피시키는데 활용하는 SPEEDI는 원자력 방재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관저의 대책본부는 SPEEDI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른 체 주민들을 피난시켰다. 그런데 이 자료는 사고 다음날부터 미군에게는 제공되고 있었다.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은 사고수습이 잘 안되자 원전을 포기하려했다. 

총리는 격노하며 원전 사수를 명령했다. 원전을 포기하는 것은 일본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관저의 100시간’을 읽으면서 세월호 참사를 생각했다. 

과연 우리에게 재난에 대처하는 매뉴얼과 콘트롤타워는 있었는가?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의 청와대 7시간은 밝혀질 수 있을까? 만약 우리나라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생각이 많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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