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일곱 개의 도토리
원숭이와 일곱 개의 도토리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4.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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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승범 <시인>

옛 세상이 지금과 같지 않고 지금 세상이 옛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야 그날이 그날이어서 궁상을 벗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다 같이 겪는 시절이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동으로 나눠쓰던 공중 전화기의 모습이 각기 저마다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변하면서 우리네 사는 모습도 점차 개인화되고 차별화 되어 갔습니다. 세월은 변하고 바뀌어서 내 일은 내 일이지만 내 일이 아닐 때도 있고, 남 일은 남 일이지만 여전히 내 일이 아니라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불공정한 사회로 변질되어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얼굴 좀 알려졌다는, 그래서 목소리에 권력 좀 들었다는 사람들과 우리네 천부와의 삶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높은 곳에 거주하신다는 그분들은 거짓과 위선이 드러나고 밝혀져도 요지부동입니다. 부끄러운 짓을 해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거짓이 드러나도 얍삽한 궤변으로 무마시키고 맙니다. 오로지 제가 앉아 있는 자리의 보전과 지속, 그리고 상속을 위해서 그들은 추해도 추함을 모르고 질책을 해도 들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 와중에 언론과 방송은 또 다른 화제(話題)로 위정자의 거짓을 파묻을 시간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네 천부들은 아침 저녁으로 받아먹는 도토리 몇 개에 현혹돼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잊고 있습니다.
  군림하고 있는 그네들은 우리네 천한 속성을 다 꿰고 있나 봅니다. 아침에 세 개를 주다가 저녁에 네 개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패를 지어 나누어 먹으라고 싸움을 시키기도 하고, 세 개 중 두 개를 누가 공짜로 먹었다고 이간질을 하기도 하고, 한 개를 먹은 놈의 엉덩이는 빨갛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다는 둥 흉보기도 하고 해서 어쨌든 일곱 개 밖에 먹을 것이 없는 우리 천민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네는 또 그렇게 잊고, 그리고 잊혀지는, 원숭이와 같아서 누구의 사주에 놀아나는지도 모르게 사육되어지고 있습니다. 곳간에 가득 먹이를 쟁여 놓고 썩히는 것들에 대한 분노는 잊은지 오래여서 이제는 분노하는 방법도 모르고 오히려 우리들끼리 분열하고 또 분열돼서 적이 누구이고 동지가 누구인지조차, 어디로 가야 하는지마저 알 수 없는 상태로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일곱 개를 나누어 먹어야 하는 원숭이들끼리 공짜로 먹어라, 사서 먹어라, 엉덩이가 빨갛네 노랗네, 더럽네, 하얗네 하며 싸우고만 있습니다. 그 상황을 조정하는 윗것들은 ‘역시 천한 것들이 천하게 놀고 있네. 천한 것들은 어쩔 수 없어’라며 비웃고 있겠지요.
  바른 정신을 갖고 있지 않으면 현혹되기 쉬운 세상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헷갈리는 세상입니다. 내가 지녀야 할 것이 체념이 아니라 분노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던져진 일곱 개의 도토리가 왜, 어디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던져주었는지를 알아야 하고, 잘못 던져진 것이라면 거부해야 하고, 이용하기 위해 던져진 것이라면 분노할 줄 알고, 속 안에 독을 감춰 놨으면 되먹일줄도 알아야 하는 그런 올바른 정신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세상엔 결코 일곱 개의 도토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무수히 많은 도토리를 감춰놓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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