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중국 근대사 일부를 볼 수 있는 총통부(總統府)
<5> 중국 근대사 일부를 볼 수 있는 총통부(總統府)
  •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 관장>
  • 승인 2015.04.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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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중국 장강(長江) 문화의 향기를 찾아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 관장>

남경대학살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점심을 바쁘게 먹고, 곧 바로 중국 근대사의 일부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총통부로 갔다. 

‘總統府’라고 큼직하게 새겨진 웅장한 석조 문이 우리를 위압하는 듯 버티고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궂은 날임에도 총통부 앞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입장표를 사기 위한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육중한 석조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정원이 나오고, 그 정원을 지나 건물 본관 앞으로 다가서니, 그 유명한 손문의 친필 ‘天下爲 公’ 의 현판이 걸려 있었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이 총독부에 대한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아야겠다. 

이 총독부의 건축물은 6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명(明) 초에는 두 왕부(王府)의 자리였으며, 청(靑)대에 와서는 강녕직조서(江寧織造署)와 강남총독서(江南總督署)가 있었던 자리이며, 또한 건륭황제나 강희황제가 강남을 순시할 때는 행궁(行宮)으로 사용하였다.

그 후 1851년에는 청나라의 부패에 환멸을 느낀 홍수전(洪秀全)이 태평군(太平軍)을 이끌고 남경을 점령하고는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세우고 이름도 천경(天京)으로 칭하면서 수도로 삼고, 14년간 독립된 나라를 이끌면서 이곳에다가 대규모의 태평천국 천조궁전(天朝宮殿) 즉 천왕부(天王府)를 세웠다.

그리고 1912년 1월 1일 손문은 청나라를 폐지하고 봉건군주제의 오랜 역사에서 공화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이곳에서 중화민국 대총통에 취임했다. 

1948년 5월 20일에는 장개석(蔣介石)이 총통으로 당선되어 국민정부가 총통제(대통령제)로 바뀌게 되었다. 1949년 4월 23일에는 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이 남경에 진격하고, 다음 날인 24일엔 총통부를 점령하게 되며, 부득이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쫓겨 가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98년에 이 건물을 중국 근대사 유적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는 이 총통부 관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손문의 친필 ‘天下爲公’의 현판이 걸려 있는 곳에서 부터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되었다. 

긴 중앙 홀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방들이 달려 있었다. 건물은 아주 간결하고도 힘찬 모습이었으며 상당히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는 중국혁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손문을 중심으로 한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 듯 했다. 전부 금도금을 한 화려한 홍수전의 옥좌가 인상적이었고, 장개석이 근무를 하던 총통집무실, 중화민국 총통부 임원들의 기념적인 각종 행사 활동사진들, 당시 총통부의 회의실 등 그 외 많은 중국 근대사의 유적 유물을 전시하여 역사의 기록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관람실을 빠져나온 우리는 각종 수종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아름다운 연못과 기이한 괴석 군들, 그리고 손문의 동상을 둘러보면서 중국의 근대사, 특히 손문과 장개석의 일대기 유적을 보면서 흥망성쇠의 아픈 역사를 느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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