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의 봄
애수의 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4.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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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흘러간 노래 중에 애수(哀愁)의 소야곡(小夜曲)이란 것이 있다. 떠나간 옛사랑을 못잊어 괴로워하는 노래 속 주인공의 모습이 아련한데 이러한 애수(哀愁)의 감정은 역설적이게도 화사하기 그지없는 봄날에 전염병처럼 찾아오곤 한다. 아마도 봄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함께 했던 옛사랑이 그리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꽃은 봄이면 다시 피지만 떠나간 옛사랑은 다시 오지 않는 데서 애수(哀愁)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봄의 또 다른 손님이다. 당(唐)의 시인 유운도 봄에서 애수(哀愁)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강남곡(江南曲)

汀洲採白蘋(정주채백빈) : 물가 모래섬에서 흰 개구리밥 따는데
日落江南春(일낙강남춘) : 강남의 봄 풍경 속으로 해가 저무는구나.
洞庭有歸客(동정유귀객) : 동정호 부근에서 돌아오는 나그네 
瀟湘逢故人(소상봉고인) : 소상강 가에서 내 임을 만났단다.
故人何不返(고인하부반) : 내 임께선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는지요.
春華復應晩(춘화복응만) : 화사한 이 봄은 또 저물고 말 것인데
不道新知樂(부도신지낙) : 새사람과 사귀는 게 즐겁다 하지 않고
只言行路遠(지언항노원) : 그저 길이 멀다고만 말했다는군요.

양자강(揚子江) 이남이라는 의미인 강남(江南) 땅에는 봄이 일찍 찾아온다. 그곳에는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들어가는 물들이 이곳저곳 많이 있고, 봄이 오면 이곳 사람들은 물가에 나아가 식용으로 할 수 있는 흰 개구리밥을 따곤 한다. 봄을 맞아 주인공은 물가에 나와 사람들이 흰 개구리밥을 채취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해가 봄이 찾아든 강남(江南) 땅에 저물고 만다. 물가에 나온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주인공은 식량을 장만하기 위해 물가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 물을 타고 올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왼종일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끝내 오지 않았다.

시에는 봄의 화사하고 아름다운 풍광이 그려지고 있지 않지만 강남(江南)의 봄(江南春)이라는 말에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찾아온 봄의 모습이 집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전혀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 사정을 잘 아는 나그네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동정호(洞庭湖)에서 왔다는 그 나그네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소상(瀟湘)은 동정호(洞庭湖) 부근을 흐르는 두 물을 뜻하는 말이지만 통상 동정호(洞庭湖)일대를 칭하는 말로 쓰인다. 바로 이곳에서 나그네는 주인공이 기다리는 그 사람을 최근에 보았다는 것인데 그를 통해 전해 들은 말은 주인공을 낙담시키기에 충분하다. 

새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에 빠져서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길이 멀어서 못 오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화사한 봄은 곧 가고 말 것인데 그 봄을 함께 할 사람은 끝내 오지 않자 주인공은 봄의 애수(哀愁)를 진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봄은 그 자체만으로는 화사하기 그지없지만 그 화사함이 도리어 좋은 사람과 함께 했던 지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이 추억의 회상은 봄의 애수(哀愁)를 촉발시키는 촉매제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것도 봄이고, 그 추억을 못 잊어 애수(哀愁)에 젖게 하는 것도 봄이니 봄은 정녕 외로운 사람들에게 병 주고 약 주는 심술쟁이란 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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