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애국교육시범기지인 남경대학살기념관(南京大虐殺記念館)
<3> 애국교육시범기지인 남경대학살기념관(南京大虐殺記念館)
  •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5.04.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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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중국 장강(長江) 문화의 향기를 찾아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유명한 주석의 산지였으나 한나라 고조 유방 때 모두 캐내 더 이상 ‘주석이 없다’는 뜻으로 불리게 된 무석(無錫.우시)에서 일박을 한 우리는 남경을 향하여 아침 7시10분 경 출발했다. 주변에 그 유명한 삼국지를 촬영한 세트장인 삼국성, 수호지를 찍은 수호성 그리고 중국 제3의 담수호인 태호(太湖) 등 많은 역사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 역사의 도시를 그냥 떠나게 됨이 무척 아쉬웠다.

9시 50분경 중국에서도 가장 역사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남경에 도착했다. 시내로 들어서니 옛날 송나라 때의 수도였고, 명나라 초기에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답게 옛 성벽도 보였다. 먼저 찾아간 곳은 남경대학살기념관이었다. 이 남경대학살기념관은 1937년 일본인들이 남경의 주민들을 잔혹하게 집단학살한 강동문(江東門) 및 ‘만인갱’의 유적지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부지면적은 약 7만 4천㎡, 건축면적 2만 5천㎡에 달하며 전람면적이 9,800㎡에 달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 규모가 크고 웅장했다. 1985년 8월에 정식으로 세워져 대외에 개방하였으나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확장 공사가 있었다고 한다. 새 기념관은 2007년 12월 13일 남경대학살 30만 동포 참사 70돌 되는 해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 넓은 기념관은 집회광장지역, 전람진열지역, 유적지역, 평화공원지역 등 네 가지 기능성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먼저 집회광장지역 입구로 들어서니 젊은 여인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축 늘어진 자세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형상의, 10여m 높이의 큰 조각상이 한눈에 보였다. 그 외에도 참혹하게 죽어가는 형상의 조각들이 8개나 있었다. 입구에 서 있는 이 조각상, 그리고 일본군들이 6주 사이에 살해한 중국인들의 숫자가 30만 명이라는 표지석만 봐도 내부의 모든 전시물들이 얼마나 참혹하였을까를 알 만했다. 거기에다 때맞춰 비까지 내리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했다.

다음은 전람진열지역인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벽면 쪽 한편에 학살당한 중국인들의 사진과 명단이 전시되어 있었고, 처참하게 학살당한 장면들의 역사적인 사진과 흔적들, 고문할 때 사용한 끔찍한 도구들, 살해 무기였던 기관총 등, 비디오 영상물, 그리고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이 대량으로 발견된 구덩이가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유골들, 그 외 많은 자료를 철저하게 수집하여 현장감을 최대로 살리고 있었다. 심지어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등 외국인들의 증언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었다. 유적지역을 거쳐 평화공원지역 등 이 광대한 기념관을 대충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12시경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이 기념관은 1937년 12월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남경대학살’, 즉 일본인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를 고발하는 기념관이었다. 중국 내의 극심한 반일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중국 정부는 전 국민에게 무료로 관람시키면서 전국 애국 교육 시범 기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중국 침략 일본군의 남경대학살 기념관 해설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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