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월
아픈 사월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5.04.2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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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수안 <수필가>

여기도 복사꽃 저기도 복사꽃이다. 삶에 바빠 둔해져버린 내 감성도 흔들어 깨울 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살랑대는 봄바람에도 속절없이 져버리는 연분홍 고운 꽃잎. 우수수 떨어지는 꽃비를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 온다. 꽃의 짧은 생애에서 그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활짝 피기도 전에 진도 앞바다 거친 물결에 져버린 꽃봉오리들…. 어떤 이는 세월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며 점잖게 타이른다. 어떤 이는 그 지겨운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며 화를 낸다. 한편 벌써 잊어서 미안하다는 이,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다. 포근했다 비바람 불었다 하는 올해 사월의 날씨만큼이나 의견이 분분하다. 

사고 1주기인 지난 16일에도 날씨는 몹시 사나웠다. 하지만 비가림 시설 덕분에 일을 할 수 있었다. 작은애와 둘이서 복숭아 꽃눈을 솎는데 자연스럽게 진도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이 왜 그 일을 당했는지 근본 원인을 모른 채 일 년을 보낸 어버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진실은 왜 밝혀지지 않는 걸까. 국가의 정보력이 미약한 걸까. 아니면 의지가 부족한 걸까. 그 이야기만 나오면 화를 내는 사람은 무슨 심리일까.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세찬 바람이 먹구름을 몰고 왔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비닐 천장을 세게 두드렸다. 안되겠다 싶어 밭을 나오는데 세상에나, 복숭아나무 세균성구멍병 예방을 위해 내려놓은 방풍망이 뜯겨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두어 해 전, 강력한 태풍 볼라벤 때도 요동 않던 시설인데 그날은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어른들 말만 믿다가 떠난 우리 아이들, 하늘도 그날을 기억하며 아파하는 거라 믿고 싶었다. 

집으로 오자 습관처럼 TV를 켰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사고 1주년을 돌아보는 방송이 주를 이루었다. 아직도 진실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담은 내용이 특히 많았다. 예상대로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있었다. 어제, 그제, 며칠 전, 그리고 내일이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삶. 별 큰일 없이 소소한 사건에, 소소한 웃음과, 소소한 아픔으로 만들어지는 평범하고 가벼운 일상…. 

세월호 사건 같은 무거운 이야기는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어찌 그 사람들뿐이겠는가. 우리는 모두가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진실을 알아야하고, 처벌 받을 사람은 받아야 하고, 사과할 사람은 고개를 숙여야 하고, 용서할 사람은 용서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그 첫 단추인 진실은 덮어 두고 일상으로만 돌아가자고 한다. 그러니 진실을 요구하고, 되풀이 되는 말에 지겹다고 화를 내고, 의견이 분분하고, 이때다 하고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가는 위정자도 나오고, 따라서 국가적 에너지도 소모되는 것이다. 

꽃 피는 사월, 그러나 너무 빨리 져버리기도 하는 아픈 사월, 복사꽃은 지면서 아기 복숭아를 남겼다. 진도 앞바다에 져버린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남겼을까. 가족에게는 혈육을 잃은 슬픔을, 사회에는 분열이라는 아픔만 남긴 걸까. 그러나 그건 얼핏 보았을 때의 시각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좀 더 성숙한 뒤에는 이렇게 말하리라.

“진도의 아픔은 우리 사회의 안전이라는 값진 유산을 남겼다”고. 다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너무 많은 날이 남은 것 같아 슬퍼지는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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