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광화문 광장
4월 18일, 광화문 광장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5.04.2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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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시민기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추모집회가 열렸던 4월 18일, 광화문 광장 일대는 거대한 차벽으로 겹겹이 둘러 싸였다. 경찰은 차벽 전용트럭과 경찰버스 등 차량 470여대와 172개 중대 1만37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세종로네거리, 광화문광장, 경복궁역 일대를 전면 통제했다. 차벽으로 광화문 일대가 막힌 줄 몰랐던 차량들은 넓은 길을 두고 우회하느라 극심한 교통정체가 벌어졌다. 도로가에 설치한 차벽은 완벽했다. 버스와 버스의 범퍼가 절묘하리만큼 맞닿아 있어 사람의 통행은 불가능했다. 행인들은 차벽을 따라 수백 미터를 걸어간 다음에야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광화문 역은 폐쇄되고 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나들이 나온 시민들의 발도 묶였다. 한편에선 중국 관광객들이 텅 빈 도로에 들어가 중앙선에 올라서 사진을 찍었고, 거리를 막아선 경찰에게 관광객이 항의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경찰은 차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집회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최루액을 뿌리며 시민 100여명을 연행했다. 그중에는 세월호 유가족 21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경찰은 강력한 진압을 작정한 듯 했다. 경찰이 어림한 집회 참가자보다 훨씬 많은 72개 중대 1만3700여명의 병력을 전국에서 차출했고, 2011년 헌법재판소가 “차벽은 불법·폭력 집회나 시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명백하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가능한 거의 마지막 수단”이라며 위헌이라고 판단한 ‘선제적 차벽설캄를 감행했다. 4월 16일부터 3일째 이어지던 대규모 집회가 평화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이렇게 대비를 한 것을 보면 4월 18일의 집회가 폭력적으로 번지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도피성 해외순방이라고 비난받는 대통령과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식물총리로 전락한 이완구 총리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키는 계기로 삼고 싶었을까? 

그러나 세월호 참사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평범한 국민들이다. 이유도 모른 채 다 키운 자식을 진도 앞바다에서 잃어야했던 부모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왜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왜 정부는 단 한 생명도 구하지 못했는지, 1년이 되도록 하나로 밝혀내지 못한 그 진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온 가족들도 많고 세월호 희생자들과 같은 또래인 학생들도 많았다. 이런 집회참가자에게 경찰은 ‘여러분의 행동은 불법’이라며 해산을 종용했고 ‘강력 대처’하겠다는 협박성 방송을 되풀이 했다. 경찰 스스로 ‘선제적 차벽설캄라는 불법을 자행하면서 폭력과는 거리가 먼 집회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찰의 대처는 과했다. 이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켜 줘야할 경찰이 그 존재이유를 망각한 정권에 대한 과잉 충성이다. 

공정해야할 공권력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권에 대한 충성이 개인의 그릇된 입신양명으로 보상받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고문하던 사람이 고위직에 오르고,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긴 사람이 청와대의 요직에 들어앉고, 수백억 원의 정치자금을 실어 나르다 정치자금법에 걸려도 버젓이 국회의원이 되고, 물고문에 의해 사망한 박종철 군을 담당했던 검사가 대법관이 되겠다고 나서는 세상에서는 공권력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바른 세상을 위해서는 과거를 잊지 말아야한다.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꼼꼼히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자들이 다시는 국민 앞에 나서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 그럴 때 공권력은 정권의 하수인에서 벗어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보루가 될 터인데, 2015년 4월 18일 광화문에서는 치욕스런 그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었다. 늘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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