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검사와 병적기록표
징병검사와 병적기록표
  • 조종만 <충북지방병무청 징병검사과장>
  • 승인 2015.04.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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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종만 <충북지방병무청 징병검사과장>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전해온다.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겠지만 사람의 행적은 기록으로 남아서 후대에 전해진다는 말일 게다.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기록으로 시작해서 기록으로 생을 마감한다. 출생신고부터 시작해 학교에 입학하면 생활기록부에 나의 학창시절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학창시설 생활기록부를 지금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은 해 본다.
 병역이행도 예외는 아니다. 아마도 예전 분들이라면 노란색깔의 병적기록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병역 나이로 19세 때 징병검사를 받으면서부터 병적기록은 사실상 시작된다.
 징병검사 통지서를 받아 들고 본적지에 위치한 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에 가면 잔뜩 주눅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행정기관이기도 하거니와 병무청이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했다. 신체검사를 다 마치고서 친구는 보충역인데 나는 현역병 입영 대상자로 판정이 되면 대단한 감투라도 쓴 마냥 우쭐댄 기억도 난다.
 이렇게 병적기록표에는 19살 청춘의 신체와 학력사항 등이 낱낱이 기록되어 진다. 징병검사뿐만이 아닌 내가 어떤 이유로 입대를 연기했는지, 어느 부대로 입영해서 어떤 보직을 받았는지 등도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병역에 관한 내 청춘의 기록을 보고픈 사람은 병적기록표 사본을 떼 보시라.
 한편으론 탈도 많았다. 컴퓨터가 도입되기 전에는 징병검사 기록을 병적기록표에 수기로 작성했기 때문이다. 검사 사항란에 일일이 군의관 도장을 찍어 확인을 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 되고 비리가 싹트는 빌미가 된 것이다. 1998년에 터진 병역비리 사건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병무인의 한 사람으로서 고개를 숙인 채 몸둘 바를 몰랐던 게 사실이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던가. 병무청은 그러나 90년대 말의 병역비리 사건을 교훈삼아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 징병검사의 모든 검사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입영까지의 모든 병역이행 과정을 완전 전산화하는 작업을 2001년 2월 19일 이루어 냈다.
 지난달에 충북병무청 징병검사장에 검사를 받으러 온 신체검사 대상자는 ‘나라사랑 카드’에 신분등록을 하고, 리더기에 카드를 인식시키면 신장·체중과 시력부터 시작되는 징병검사의 각 과목별 기록이 자동으로 입력 처리된다. 신체검사 기록이 전산으로 자동 처리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다. 한 때는 군대를 가는 것이 인생에 있어 대단한 손실로 여겼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군대를 다녀 와야만 사회에서 인정을 더 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병무청도 병역명문가 찾기 등 병역을 이행한 사람이 자랑스럽고 떳떳한 사회 분위기 조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충북지방병무청은 지난달에 징병검사를 마쳤는데, 8655명의 검사자 중에서 87%가 넘는 8558명이 현역병 판정을 받았다는 충청타임즈 보도가 얼마 전 있었다. 대상자 중에서 열에 아홉 가까이가 현역병으로 입대를 하게 되는데, 충북도뿐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신성한 병역을 성실하게 이행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그들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보답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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