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도 한철
버드나무도 한철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4.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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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딱딱하게 굳은 모습으로 생명을 꽁꽁 숨기고 있던 초목들은 봄바람의 속삭임에 슬그머니 밖으로 생명의 낯을 드러낸다. 봄바람을 맞은 초목은 삽시간에 딱딱한 겨울 갑옷을 벗어버리고 화사하고 부드러운 비단 옷으로 갈아입는다. 생명의 느낌은 부드러움이고, 이 부드러움은 곧 봄의 촉각(觸覺)이다. 이 봄의 촉각을 가장 선명하게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버드나무이다. 까맣고 딱딱한 무채색의 나무 기둥에 불과했던 버드나무는 봄이면 백팔십도 바뀐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버드나무야말로 봄이 연 생명 잔치의 주빈(主賓)이라고 할만하다. 송(宋)의 시인 증공(曾鞏)은 이 봄의 주빈(主賓)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버드나무 노래(詠柳)

亂條猶未變初黃 (난조유미변초황) 버들가지 어지러이 아직은 연황색인데

依得東風勢更狂 (의득동풍세경광) 부드럽다 동풍 만나니 더욱 거세지네

解把飛花蒙日月 (해파비화몽일월) 버들솜이 해와 달을 가리는 것은 알지만

不知天地有淸霜 (부지천지유청상) 천지에 찬 서리 있음은 알지를 못하네.

봄바람을 먼저 맞으려 함인지, 버드나무는 무수한 가지를 촉수처럼 내밀었다. 가지들끼리도 앞다툼을 하는지 서로 얽히고설켜 어지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어지러운 가운데서 한결같은 것은 그 빛깔이다. 녹색보다는 황색에 가까운 빛깔은 태어날 때의 가녀린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 가녀림은 예사의 것이 아니다. 삼동의 혹한을 겪으며 필사적으로 지켜낸 생명의 발현이 바로 이 가녀린 나뭇가지들인 것이다. 가벼운 봄바람에도 하늘하늘 몸을 흔드는 부드러움은 생명의 표상이다. 그렇다고 버드나무 가지가 늘 흐느적거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심술궂은 봄바람을 만날짝시면,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고 곧장 미친 듯한 기세로 허공을 때리기도 하는데, 알고 보면 이것도 봄이 불어넣어 준 생명력 덕분이다. 

간혹은 부드럽기도 하고 간혹은 사납기도 하면서 자유자재로 마음껏 생명력을 뽐내던 버드나무 가지는 이번에는 하얀 버들 솜을 바람에 실어 허공으로 보내보는데, 그것이 얼마나 엄청나든지 해와 달을 가릴 정도이다. 버드나무의 생명력이 극에 달한 것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생명력이 극에 달해 있을 때면, 그것이 언제까지나 지속할 것으로 생각하는 오만에 빠지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머지않아 가을이 올 것이고, 그때 무서리가 내리면 속절없이 지고 말 운명임을 모른 채로 말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柔弱勝剛强)’는 노자(子)의 말도 따지고 보면, 생명력을 일컬은 말이다. 강하기만 하여 유연함이 없다면, 이는 생명이 없다는 증좌이고, 생명이 없는 강함은 결코 생명이 있는 유약(柔弱)함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봄이 모든 사물에 선사하는 부드러움이야말로 생명의 근본일지니, 부드러움이 극에 달한 버드나무 가지는 적어도 봄 한 철 동안은 그 생명력을 마음껏 뽐낸다 해도 결코 허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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