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5.04.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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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4.16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마치 집안의 아버지 같은 든든한 존재, 그래서 국민은 자발적 복종과 신뢰를 보내며 불이익을 감수하기도 하는 관계로 배워왔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은 이미 내 머릿속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걷어 낼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국가가 어떻게…. 국가에 대한 실망감, 분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들로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인문학 모임에서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을 마련했다.
 도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레이먼드 카버 저)은 이 만남을 며칠 앞두고 읽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 어쩌나,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고 있는 가족을 쳐다볼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평소 즐겨 듣는 독서 팟캐스트 방송에서 4.16 발생 직후 이 책을 낭독하는 것으로 방송을 대신했다고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마음을 다잡고 그동안 미뤄 두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작품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집 ‘대성당’에 수록된 40쪽의 짧은 소설이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 부부에게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불행이 찾아온다. 부부의 아이가 8세 생일 날 뺑소니 차량에 치어 의식을 잃은 것이다. 아이가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시간 동안 부부가 겪는 극도의 공포와 혼란스러움. 불쑥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의문의 남자. 결국 아이는 세상을 떠나고, 부부는 큰 슬픔에 잠긴다.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몇 마디를 내뱉고 전화를 끊어 버린 이 남자는 아이 생일 케이크를 만든 빵집 주인이었다. 이 남자는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가라는 메시지를 부부에게 명확히 전달하지도 못할 정도로 퉁명스럽고 배려심이 없는 듯 보였다. 분노로 이 남자를 찾아간 부부는 빵집 주인으로부터 뜻밖의 위로를 받는다. 가족 없이 외롭게 지내면서 평생 다른 가족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빵을 만들며 살아온 빵집 주인의 진실되고 소박한 이야기는 아이를 잃은 후 지치고 비통했던 부부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된다.
 세월호 유가족 창현 어머니와의 만남은 걱정했던 것과 달랐다. 복받치는 감정에 울컥 하는 우리들보다 창현 어머니는 의연했다. 지난 1년의 시간을 겪으며 유가족들은 우리가 겪는 이 과정을 충분히 겪었고 또 어떤 부분은 미뤄뒀을 것이다. 유가족의 요구는 아주 명료했다. 진실규명.
유가족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규명’ 외에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활한 언론과 정치인들이 유가족을 자식의 목숨을 가지고 돈이나 노리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모욕하고 있고, 진실규명 요구는 정치적 색깔을 띤 집단의 선동행위로 몰고 있다. 지친 국민은 하나 둘 씩 등을 돌리고 있다.
 국가의 재난 대비 시스템과 기술적 수준이 떨어져 구조작업에 실패한 것이라면 참사는 능력이 부족한 국가에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후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찾아 책임을 묻고, 우리 중 누군가가 겪을 일을 대신 겪은 희생자들에게 부채감을 갖고 마음을 모아야 하는 것은 국가라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면 그 안에서 이뤄져야 할 당연한 일이다.
강연을 마친 후 참가자들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을 정리해서 한 장의 종이에 모아보았다. 약속 지키기부터 거짓말 하지 않기 등. 우리의 소박한 실천이 갈팡질팡하는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두 번 내동댕이쳐진 유가족들에게 빵집 주인의 소박한 빵처럼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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