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모독 단호히 응징할 때
유권자 모독 단호히 응징할 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04.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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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비리 의혹을 받는 정치인들에겐 일종의 대응 매뉴얼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잡아뗀다. “만일 사실로 드러나면 주저없이 자리를 내놓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곁들인다. 사실로 밝혀지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자리에서 쫓겨나야 할 판인데도 이런 불필요한 배수진을 친다. 최근에는 목숨을 거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이러다가 무조건 오리발로 일관하기 곤란한 단서라도 나타나면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로 후퇴한다. 부실한 기억력을 내세우며 버티기는 어려운 정황이 새롭게 드러나도 순순히 꼬리를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오해를 받을만한 상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법에 저촉되는 짓은 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고개를 곧추세운다. 이같은 버티기는 대체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풀죽은 코멘트로 귀결되는데도 말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완구 총리도 이 매뉴얼에 충실했다. 김 전 실장은 처음에는 “비서실장에 취임한 후로는 성 회장을 만난 적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성 회장의 일정표에서 함께 만찬까지 한 근거가 드러나자 “다시 기억을 되살리고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보니까 기억이 난다”고 말을 바꿨다. 성 회장과의 다른 회동 의혹에 대해서도 “만난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하진 않다”며 ‘절대 사실무근’이라던 애초의 주장을 번복했다.

이 총리는 매뉴얼을 더 진화시켰다. 그는 성 회장에 대해 동료 국회의원일 뿐 개인적 친분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언론에 20개월동안 23번 만났다는 보도가 터지자 “원내대표는 의원을 하루에도 여러번 만난다”고 말을 바꿨다. “혈액암과 투병 중이어서 대선에 관여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지원유세 사진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이 됐다.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성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오락가락 했다. 당시 성 회장과 독대가 없었다고 부인했다가 자신의 운전기사가 두 사람의 독대 정황을 언급하자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물러섰다. 자신의 말바꾸기를 애꿎은 충청도 말투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떳떳한 만남이었다면 그 사실 자체를 숨기기 위해 전전긍긍할 이유가 없다. 많은 국민들은 이런 상식을 바탕으로 이미 판정을 내린 듯하다. 두 사람의 석연찮은 언행이 가져올 첫번째 폐해는 바로 불신의 문제이다. 검찰과 법원이 이들이 돈을 받지는 않았다며 무혐의 결론을 내린들 국민적 신뢰를 받기는 어렵게 됐다. 두 사람은 국가의 검증을 거친 진실조차도 통하지 않는 절대 불신의 사회를 조장한 악역을 맡은 꼴이 됐다.

앞으로도 국민들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숱한 허위와 기만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수사는 전방위로 확대되고 그 파고는 여당을 넘어 야당까지 덮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특검 발동’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야당이 이번에는 전에 없던 자제력을 발휘하는 모습에서 이런 불길한 조짐이 읽혀진다. 이미 야당 중진의원들의 명단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온 터이다. 정치인의 말장난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정계에서 집단 양심고백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인의 공적인 거짓말은 자신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유권자에 대한 불경이요 모독이다. 유권자 기만이 횡행하는데는 방관해온 유권자들의 책임도 크다는 뜻이다. 이념과 지역, 세대를 넘어 주인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조차 차리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유권자들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부정직한 정치인 리스트를 만들어 표로 응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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