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깽이풀
깽깽이풀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4.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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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어린 깽깽이풀 동그란 잎사귀에도 고르게 내린다. 아주 귀한 잎사귀다. 마치 노환이지만 정갈한 어머니의 모습 같다. 그러나 초록빛 여린 잎에 서글픔이 묻어난다. 그것은 왜 그럴까?

지난가을 2년 전에 뿌린 깽깽이풀 씨앗이 기다려도 나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심은 흙을 어미 깽깽이 옆에 쏟아부어 주었다. 그런 후 까맣게 그것을 잊고 있었다. 몇 주 전에 봄 뜰을 보고 있을 때 보랏빛 깽깽이풀 옆에 어린싹이 소복하게 트고 있었다. 너무 작아 알 수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모습이 드러난다. 동글동글한 잎의 깽깽이 어린 싹이다. 

남편이 야영장에 근무할 때이다. 여름방학 때 아이들과 근무하는 곳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산촌이었다. 한창 들꽃에 심취했던 나는 산으로 올랐다. 한 그늘에 잎이 연잎처럼 생긴 식물이 신기했다. 이름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집으로 데려와 단풍나무 밑에 심었다.

이듬해 봄 단풍나무 아래는 연보랏빛 풀꽃이 피었다. 가녀린 줄기를 올린 꽃이 가냘퍼 보였다. 처연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꽃이 진 후 더 여러 포기를 키우고 싶어 포기나누기를 했다. 그러나 시름시름 시들더니 그 후엔 꽃을 볼 수 없었다. 욕심이 죽음을 부른 것이다. 

아쉬움에 가득찼던 난 서점에 가서 ‘취미의 산야초’ 책을 샀다. 열심히 탐독하던 중 그 꽃이 깽깽이 풀인 것을 알게 됐다. 그 풀꽃은 없어졌지만 사진으로라도 보게 되어 반가웠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인터넷의 들꽃 판매하는 곳을 알게 됐다. 그 꽃을 본 후 5년이 넘어서였다. 마침 깽깽이풀을 판매하고 있었다. 네 포기를 주문해 기르기 시작했다. 

귀한 것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자라기 힘든 것 같다. 네 포기 중 두 포기만 살아남았다. 다행히 한 포기는 잘 자라 포기가 실해졌다. 여러 해 기르다 보니 씨앗도 발견하게 됐다. 깽깽이 씨앗은 제때 안 보면 볼 수가 없다. 씨앗이 영글면 갈라져 말리기 때문에 잘 살펴야 했다. 꽃이 진 후 열매가 달려 자주 살폈다. 영글었을 때 채취하여 파종한 것이다. 

자연에서는 개미가 매개체 역할을 한다. 깽깽이풀 씨앗에는 달콤한 향인 ‘엘라이오솜’이라는 지방 덩어리가 붙어 있어 개미들이 씨앗에 붙은 먹잇감을 얻기 위해 열심히 물어 나른다. 실수로 나르다가 중간 중간에 그 씨앗을 숲에 떨어뜨리게 되어 깽깽이가 그곳에서 발아돼 종족을 퍼뜨린다고 한다.

어미 옆에서 싹을 띄운 것은 어찌 보면 엄마 떨어진 어린아이의 간절한 만남 같다. 엄마 곁은 늘 편하니까. 그렇게 정성들여 물도 주고 보살폈는데…. 옆에 있는 그 모습이 퍽 행복해 보인다. 노환 중에 계신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이렇게 누워 있는데 한 번도 안 온다”라며 서운하신가 보다. “어머니 나이가 90세인데 어머니의 친정어머니는 나이가 많아 돌아가셨을 거라”고 말씀드린다. 다시 아기처럼 되신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잊으시면서도 친정어머니가 그리운가 보다. 

깽깽이풀 옆에 옹기종기 모인 싹들이 어미를 둘러싼 어린 자식들처럼 다정해 보인다. 어머니도 어린싹처럼 엄마 곁이 가고 싶은가 보다. 요즘은 어릴 때 자라던 삼팔선 너머 고향집으로 가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엄마는 늘 마음속의 고향인가 보다. “내일은 집에 가야겠어” 어머니의 독백에 내 눈언저리가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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