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놓치지 말자
아무것도 놓치지 말자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5.04.1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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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영숙 <시인>

무심천 꽃술 마시러 가자. 가장 깨끗한 마음의 빈 잔 하나 챙겨 들고….

황무지를 뚫고 피어난 춘 사월의 벚꽃을 보기 위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30분 정도 걸어서 무심천에 도착했다. 이른 퇴근 시간인데도 많은 시민이 벚꽃 잔치에 초대되었다.

어깨를 포근히 감싼 채 걷는 연인들,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브이 자로 카메라 포즈를 취하는 여고생들, 그들의 모습을 따라가노라니 입가에 미소가 팝콘처럼 퍼진다. 그냥 있어도 취할 것 같은 화사한 풍경에 두 눈 가득 취기가 오른다.

무심천의 벚꽃은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핀다. 하얀 쌀밥을 우산처럼 펼쳐놓고 배고픈 사람들 배부르게 먹고 가라고 고봉밥 차려놓으면, 허기진 영혼들 얼굴에 벚꽃처럼 퍼지는 순백의 환희, 화사한 벚꽃 날리는 무심천에선 가난도 밥풀처럼 뒹군다.

이 사람들을 보라, 세상에서 가장 밝고 환한 등불을 저마다의 가슴에 드리우고 활짝 핀 우정과 사랑을 다독이는 순백의 환희를….

그 아름다운 풍경에 동화되어 걷는데 천변을 따라 보행하는 한 시민의 라디오에서 낯익은 노래가 흐른다. 얼핏 보아 오십 대 초반쯤 되었음 직하다.

난 꿈이 있었죠/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며 파노라마를 일으킨다.

지난 3월초 몸도 마음도 심한 겨울을 앓을 때 가까운 문인 친구가 십만 원에 가까운 인순이 콘서트 티켓 두 장을 구매해서 공연 관람을 주선했다.

공연 내내 표정을 살피며 간간이 손을 잡아주던 친구, 귀한 자리를 마련해 준 그녀를 위해서라도 수동적인 관람객이 될 수는 없었다. 마음을 동여맨 두툼한 갑옷을 벗고 공연 속으로 몰입했다.

여고 시절 그 흔한 탈선 한 번 못해본 아쉬움이 있다. 머리에 땜빵 있는 남학생들과 한 번 어울려 본 적이 없고, 그 유명한 고고장도 가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건조한 삶이었는가. 학교와 부모님이 바라는 모범생(?)이란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했으니 인생을 능동적으로 잘산 것만은 아니다.

공연 내내 겉으로는 미소를 띠었지만 속으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돌이켜보니 인생에서 내가 보이지가 않았다. 거위의 꿈 노래가 ‘아무것도 놓치지 마라’는 동료 문인의 수필제목과 오버랩 되면서 무대 중앙을 날아다녔다. 내가 펼치지 못한 ‘날개’가 눈앞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간주곡 틈틈이 인순이가 들려주는 여고 시절의 머슴아들 땜빵이야기에 열광하고 첫사랑 이야기에 모두가 맞장구칠 때 끼어들 수 없는 소통 부재의 자신이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때를 놓치지 않고 벚나무 아래 셔터를 누르며 환호하는 저들이 예쁘다. 이 넓은 우주공간에서 단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윽한 눈빛을 보내는 저들이 별처럼 아름답다.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난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지금도 내 안에 자리한 거위의 꿈이 오롯한 나만의 꿈인지 돌아본다. 사춘기보다 무서운 갱년기라지만 그 아무 것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인생 2막의 새로운 반전을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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