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 유길상 <청주 서원벧엘 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5.04.1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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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유길상 <청주 서원벧엘 교회 담임목사>

어느 날씨 좋은 봄날 홀로 무심천 벚꽃 길을 걸었다. 가족이 함께 나와서 즐기는 모습, 연인들이 함께 예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또 여기저기에서 예쁜 아기를 안고 나와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나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나도 나무 밑에 앉아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있어서 벚꽃이 만발한 예쁜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많은 사람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는 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인생, 웃음을 주는 인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떠올라 내 얼굴에 미소가 솟았다.

어떤 의미의 미소일까?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미소인지 아니면 그렇게 살고 싶지만 어려운 일이라 단념하는 미소인지 아리송하다. 그러나 정말로 이웃에게,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는 행복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수일이 지나고 무심천 벚꽃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그 말은 붉은 꽃은 열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벚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쓸쓸하기도 하고 뭔가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요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도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한다. 아무리 강력한 권세를 잡은 자도 십년을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봄에 피는 꽃이 여러 종류가 있지만, 목련꽃과 벚꽃이 제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아름다운 꽃들이 비슷한 시기에 피고 지는데 꽃이 질때는 천지차이가 난다. 벚꽃은 만개했다가도 질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목련꽃은 시들어 색깔이 변해 검은색을 띠기까지 매달려 있다. 실제로 가까이 있는 목련꽃을 보니 색이 바랜채 시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한창일때 목련꽃만큼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이 땅에 미련을 두고 그리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깨끗하게 마련 없이 떨어지는 벚꽃은 화무십일홍을 아는 것일까. 그래서 아름다울 때 몸을 던지는 것은 아닐까. 자기가 내려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지혜로운 꽃인 듯하다.

요즘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나라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누구의 책임인지 알 수가 없다. 책임지는 분들은 없고 문제만 생기니 참 어려운 나라인 듯하다. 책임지고 벚꽃처럼 결단하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라 어르신들은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는 말을 모르는 것일까. 이웃에게 꿈을 주고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으면 미련 없이 내려오면 좋을 듯싶다.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는 없는가?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라 그런 것인가? 그런 생명을 왜 저버리도록 몰고 가는 것일까. 난 어떨까? 내 인생은 예쁜 벚꽃처럼, 아름다운 목련꽃처럼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는 말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오늘부터 다시 결심해 예쁘게 살자. 아름답게 살자.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는, 행복을 주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내가 누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도 돈에, 명예에, 권력에 구차하게 미련 갖지 말자. 아름다운 모습으로, 예쁜 모습으로, 행복한 웃음을 띤 얼굴로 내려오자. 목련꽃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 말자. 추해 보인다.

우리네 인생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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