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에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며
세월호 1주기에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며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5.04.14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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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시민기자>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최루액을 발사했다. 

지난 11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의 폐기를 요구하는 문화제를 개최한 후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던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돌아온 정부의 답변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수많은 집회와 행진이 있었지만 최루액 발사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경찰청장은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인 16일에도 행사장 주변에 차벽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경찰청장의 말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가,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시사 주간지 ‘시사 인’이 세월호 1심 재판기록 3만장을 입수해 일일이 분석했다. 그 결과 승객의 운명을 가른 시간이 드러났다. 그 시간이 오전 9시 26분이었다. 9시 26분, 세월호 안에서는 ‘해경 구조정이 10분후에 도착할 예정이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배안의 학생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 대피 안내만 했었어도 전원 구조가 가능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탈출하라’, ‘퇴선하라’는 한마디 말도 없이 선장과 선원들은 탈출했다. 그리고 10시 17분 세월호가 전복되고 세월호에서 카톡 메시지가 마지막으로 발신될 때까지 51분 동안 어느 누구도, 현장에 도착한 해경 구조정조차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고의 1차적인 책임은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겠지만 대형 재난사고가 났을 때 인명을 구조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일은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어땠는가?

전원 구조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내에 남아있던 304명은 단 한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눈물을 흘리던 대통령의 약속은 허언이었다. 

제발 한번만 만나달라는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은 경찰의 철통같은 저지선에 막혔다. 유가족들의 양보로 힘들게 제정한 세월호 특별법은 시행령을 통해 정부의 입맛대로 고치려한다. 

그러면서 참사 1주기를 앞두고는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발표하고, 유족들이 원치도 않는 보상안을 내놓으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국민들과 고립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 16일에 정부는 ‘국민안전다짐대회’를 따로 열고 대통령은 해외 순방길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진면목이다. 

‘목민심서’ 애민육조(愛民六條)의 구재(救災)편을 보면 ‘국가에는 구재하는 법이 있으니 삼가 행할 것이며 정해진 법 이외에도 목민관이 마땅히 스스로 구재해야 한다’ 또 ‘마치 내가 불에 타고 물에 빠진 것 같이하여 서둘러야하며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재해가 지난 후에 백성을 어루만져 주고 안정시켜 주어야 하니(撫綏安集) 이것 또한 민목의 어진 정사이다(是又民牧之仁政也)’라고 했다. 

내가 재난을 당한 것처럼 일을 처리 하라는 것, 재해가 지난 후 백성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어진 정사라는 다산 선생의 말씀은 울림이 크다. 

이 정부에게 목민심서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긴 하나 200년 전 조선 관리들에게 쏟아냈던 다산 선생의 말씀이 오늘에도 절절한 것은 세월은 흐르고 문명은 발달했으나 국민을 다스리는 관리들은 200년 전과 다름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4월의 아침. 이제 4월은 잔인한 4월, 시간이 멈춰버린 슬픈 4월에서 벗어나고 싶다.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 1960년 4월 / 歷史를 짓눌던, 검은 구름짱을 찟고 / 永遠의 얼굴을 보았다.’던 신동엽 시인의 그 4월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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