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상심의 계절
봄, 상심의 계절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4.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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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봄은 그 자체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온갖 주인공들이 오르고 싶어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봄의 무대는 각양각색의 꽃들과 연록의 나뭇잎, 푸릇푸릇한 풀, 사랑의 화음을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새들로 꾸며져 있다. 이러한 봄의 무대 위에 오르는 주인공들은 암울하고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난 환희를 온몸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환희는 오래가지 않는다. 환희의 물결 뒤로 기다림과 그리움이라는 슬픔과 회한의 물결이 곧장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 白)도 예외 없이 봄의 무대에 올라 벗에 대한 그리움을 연기했다.

◈ 이른 봄날 벗에게 부침

聞道春還未相識(문도춘환미상식) : 봄날이 돌아왔다 소식 들었으나 아직 몰라서
走傍寒梅訪消息(주방한매방소식) : 차가운 매화나무로 달려가 소식을 찾아본다
昨夜東風入武陽(작야동풍입무양) : 어젯밤 봄바람이 무창에 불어 들어
陌頭楊柳黃金色(맥두양류황금색) : 밭두둑의 버드나무 황금빛 물결이로다
碧水浩浩雲茫茫(벽수호호운망망) : 푸른 물결 넓고 넓어 구름은 아득하여라
美人不來空斷腸(미인불래공단장) : 미인이 오지 않으니 공연히 마음만 아파라
預拂靑山一片石(예불청산일편석) : 미리 푸른 산의 한 바위 털어놓고
與君連日醉壺觴(여군련일취호상) : 그대와 며칠간이나 술에 취해보려네

※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 말들을 하는 것을 듣긴 했지만, 시인은 자기 눈으로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작심을 하고 봄을 찾아 나섰다. 봄의 전령사(傳令使) 노릇을 하는 매화 곁으로 달려가 봄 소식을 물었더니, 과연 봄이 온 것이 맞았다. 그러고 보니 우선 엊저녁에 봄의 첨병(尖兵)인 동풍(東風)이 시인이 머물고 있는 무창(武昌) 땅에 상륙하였다. 동풍(東風)을 기다렸다는 듯이 맨 먼저 뛰어나와 맞은 것은 밭두둑의 버드나무였다. 고대하던 동풍(東風) 세례(洗禮)를 받은 버드나무의 얼굴에 금방 화색(和色)이 돌았다. 겨우내 깡마르고 거무튀튀했던 추레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대신 황금색 빛깔로 치장한 귀공자의 풍모로 몰라보게 변신하였다.

그러고 보니, 물도 구름도 확연하게 달라졌다. 한결 푸름을 더한 물은 부쩍 불어나 망망대해를 이루었고, 야트막히 가까이 흐르던 구름은 넓고도 멀어져 아득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봄이 온 것이다. 봄의 도래(到來)를 확인한 시인의 마음은 부푼 기대감으로 충만했지만, 이는 금세 서글픔으로 변모하고 말았으니, 봄과 함께 올 것으로 믿었던 벗이 끝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시인의 서글픔은 단순한 게 아니었다. 공허함에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심각했던 것이다. 상심(傷心)을 달래기 위해, 시인은 벗과의 상봉 준비에 나선다. 이미 푸르러진 산속에서 편평한 바위 하나를 찾아 깨끗이 쓸고 닦았다. 벗이 오면, 이곳에서 며칠이고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고 취해 볼 작정인 것이다.

봄은 환희의 계절이지만, 또한 상심의 계절이기도 하다. 환희와 상심은 동전의 양 닢처럼 늘 함께 붙어다닌다. 화사하고 생동감 넘치는 봄의 환희는 곧 정겨운 사람의 빈자리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그래서 이는 곧 상심(傷心)으로 귀결되는 것이리라.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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