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은 빚이 되고 덕을 상한다
빈말은 빚이 되고 덕을 상한다
  • 조원오 <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5.04.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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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조원오 <원불교 충북교구장>

백장회해(百丈悔海)선사가 설법을 할 때마다 한 노인이 와서 늘 대중(大衆)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대중이 물러가면 함께 물러가고 하더니 어느 날은 설법이 끝나 대중이 다 물러갔는데도 그 노인만은 남아 서 있었다.

백장선사가 이상히 여겨 물었다. “옆에 있는 자는 어찌 된 사람이냐?”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옛날 가섭불(迦葉佛) 당시에 이 절의 주지였습니다. 그 때 어느 학인이 ‘대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하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느니라(不落因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문에 5백생 동안 여우의 몸이 되었으니 선사께서 한 말씀으로 이 여우의 몸을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이는 불가(佛家)에 전해오는 공안(公案) 가운데 백장야호(百丈野狐)의 일부분이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4·29 재보선을 19일 남겨놓고 있는 가운데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말과 행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때만 되면 수많은 공약(公約)이 정치판에서 춤을 춘다.

여야가 서로 경쟁하듯 지키지 못할 공약들을 쏟아 놓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헛된 공약(空約)을 남발하게 한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빈말하는 것을 크게 경계하셨다.

말씀하시기를 “빈말로 남에게 무엇을 준다든지 또는 많이 주었다고 과장하여 말하지 마라. 그 말이 도리어 빚이 되고 덕을 상하나니라”고 하셨다. (대종경 요훈품 29장)

지키지도 못할 허공에 뜬 공약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며 그 피해는 결국 어디로 가는가?

헛된 공약을 남발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치인에게 있다.

“정치인의 삶은 마치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는 우스개가 있다.

손으로 해를 가릴 수 없듯 빈말은 결국 자신을 구속하는 악의 뿌리가 된다.

복은 여러 사람에게 지어야 기쁨이 더하고 실속 없는 빈말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줄 뿐이다.

그동안 각종 선거에 내건 공약들은 지금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공약은 공인(公人)으로서 대중과의 약속이다.

이벤트성 공약, 선심성 공약, 선거용 공약 등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인은 항상 대중의 눈과 귀와 입을 두려워해야 한다.

대중이 어리석다고 속이고 해(害)하려 해서는 안 된다.

대중의 마음을 모으면 하늘 마음이 되고 대중의 입을 모으면 하늘 입이 되고 대중의 귀를 모으면 하늘 귀가 된다.

몸과 입과 마음으로 죄를 짓기도 하지만 한 생각 잘 돌리면 몸과 입과 마음을 통해 복을 짓기도 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내건 공약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말과 행동을 책임은 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재주로 대중을 속이고 권력으로 남을 해치는 죄가 크고 무섭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한 죄업과 원망을 달게 받을 자신이 없으면 허투루 공약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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