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우나 즐거우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4.0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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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하며 자랐다. 우리의 애국가는 그렇게 나라 사랑을, 그것도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나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애국가가 일제치하에서 만들어졌으니 당연지사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해야 했을 터.

당시 선조들이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살았기에 36년간의 기나긴 식민 사슬을 끊고 조국광복을 일구어 낼 수 있었다. 걸핏하면 불바다 피바다를 운운하며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과 가난과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동포들을 머리에 이고 있어 아직은 절반의 광복이다. 광복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해 G20 국가로 거듭나게 한 우리 국민들은 위대하지만 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대 강국들이 그들의 국익확장을 위해 호시탐탐 우리의 약점을 노리고 있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피곤한 나라이다. 그러므로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는 여전히 유효한 정신이다.

하지만 이제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를 사랑하세’로 바꿀 때가 되었다. 

그렇다. 자애와 자존감이 없으면 남을 사랑하고 배려할 수 없으며 향토애도 진정한 애국심도 불굴의 투지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삶이 괴롭다고 집단자살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가에서는 일찍이 인생을 고해(苦海)라 했다. 생로병사 중에 괴로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니 인생자체가 고통의 바다인 것이다. 그 고통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삶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에게나 육체적 괴로움과 정신적 괴로움이 있다.

세상에 병원과 종교 같은 괴로움의 치유처가 많아서 거기서 고통을 덜고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주체는 온전히 자신뿐이다. 육체적 고통은 고통의 부위를 마취하거나 도려내거나 한동안 쉬고 나면 무통할 수 있지만 정신적 갈등과 번민은 자신이 내려놓지 않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멋진 인생은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반전시키는 삶에서 나온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상반되는 말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한몸이다. 분명 다른 전류지만 흐르는 전선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즐거움은 기쁨과 보람에서 온다. 그러므로 즐거움은 행복의 시작이자 행복의 원동력이다.

아이를 낳을 때 산모는 극심한 산통을 겪고, 자궁 밖으로 나오는 아이도 힘들어 고성을 지르지만 생명 탄생의 신비와 기쁨은 즐거움 그 자체다. 학창시절 공부는 괴로움의 대상이지만 괴로움을 감내하며 이룬 성취는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하여 예로부터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다. 운동선수도, 과학자도, 농·어업인도, 자영업자도, 샐러리맨도 모두 그와 같다. 분야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가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반전시킨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사랑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괴로워한다. 

괴로움의 기저에는 대부분 욕심과 집착이 자리하고 있다. 욕심과 집착이 병을 부르고 괴로움을 낳는다. 짐을 지고 온전히 가려면 수시로 그 짐을 내려놓아야 하듯 욕심도 집착도 그렇게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지고 즐거움이 찾아온다. 아니 자신도 모르게 즐거움이 스며든다.

오늘도 이런저런 일들로 번민하고 번뇌하는 그대여!

봄 햇살이 그대를 부른다.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그대를 사랑하라. 그리하면 그대도 즐겁고 행복해 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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