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봄
농촌의 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4.0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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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상 어느 것이나 그것이 있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들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온갖 꽃들과 나무, 새들로 가득찬 산이나 봄꽃을 잘 갖추어 놓은 정원에서 봄은 더 화려할 수 있지만 이는 그저 구경거리일 뿐이다. 

이에 비해 들판에 있을 때 봄은 산과 정원에 있는 것에 비해 화려함은 덜할지 모르지만 느낌은 훨씬 더 강렬하다. 왜냐하면 들판의 봄은 멀리서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지고 보고 냄새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 維)는 이러한 들판의 봄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들녘의 봄(春中田園作)-왕유(王維)

屋上春鳩鳴(옥상춘구명) : 지붕 위에 봄 비둘기 울고
邨邊杏花白(촌변행화백) : 마을 주변에 살구꽃이 희다
持斧伐遠揚(지부벌원양) : 도끼를 들고 높은 가지를 베고
荷鋤覘泉脈(하서첨천맥) : 가래를 메고 수맥을 찾아보노라
歸燕識故巢(귀연식고소) : 돌아온 제비는 옛 둥지 알아보고
舊人看新曆(구인간신력) : 옛 친구는 새 달력을 보는구나
臨觴忽不御(림상홀부어) : 술잔을 보고도 갑자기 먹지 못하고
惆悵遠行客(추창원항객) : 먼 길 떠난 친구 생각에 서글퍼진다 

시골 농가의 지붕 위에 비둘기가 한가히 앉아서 울음을 울고, 마을 주변으로 살구꽃이 하얗게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봄 풍광이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느낌이다. 농가의 지붕이나 마을의 가장자리와 같은 장소가 워낙 상춘(賞春)이라든가 행락(行)과는 거리가 먼, 너무나 소박한 생활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촌 마을에서 봄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겨울에 쉬고 있던 농사를 다시 시작하라는 하늘의 신호인 것이다. 지붕의 비둘기 울음과 마을 주변의 살구꽃 개화(開花)를 신호로 농부는 이런저런 농구(農具)를 들고 일터로 나선다. 도끼를 들고 겨우내 묵혀주어 웃자란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가래를 어깨에 걸머지고 겨울을 지나며 막혀 있던 물길을 찾아서 다시 터 놓는다. 가볍고 산뜻한 봄옷을 입고 꽃구경 나서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봄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춘흥(春興)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화려하지 않을 뿐이다. 만남도 있고 헤어짐도 있다. 제비는 돌아와서 예전에 살던 둥지를 용케도 알아보고 찾아가는 제비와의 재회(再會)가 있는가 하면, 새 달력을 보고 일을 찾아 떠나는 친구와의 이별도 있는 것이 봄이다. 그래서 봄은 기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슬픈 여운이 더 강하다. 이별을 위해 마련한 술자리에서, 시인이 마주한 술잔을 갑자기 멈춘 것은 먼 길 떠나갈 친구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따뜻하고 화려하고 기쁜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에게 봄은 분주하고 힘겨운 노동으로 다가오며, 해가 바뀌면서 심기일전하여 새 일을 찾아 떠나야 하는 친구를 둔 사람에게 봄은 슬픈 이별로 찾아올 테니 말이다. 농촌 마을의 봄은 화려하고 기쁘지만은 않지만 이것이야말로 구경거리가 아닌, 실제 생활공간에서 부딪히는 봄의 제 모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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