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과 마취
중독과 마취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3.3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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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승범 <시인>

연초에 담배 세금이 배로 올랐습니다. 많은 이들이 금연을 결심하는 듯 하더니 담배 판매량이 다시 원상 회복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올라옵니다. 그만큼 담배의 중독성이 강하다는 말이겠지요. 건강에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피우고, 가격이 올라도 끊기가 힘들고, 냄새가 역해도 멀리하기 힘듭니다. 많은 이들이 호기심에 접했다가 중독으로 빠진 경우입니다. 

아주 예전에는 가격이 저마다 달라서 각자의 형편에 맞는 담배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담배의 원가는 겨우 700~800원에 불과하고 담배에 붙는 세금이 3600~3700원이니 아무리 생산 단가를 낮춰도 담배값은 결코 내려 갈 수 없는 착취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중독된 흡연은 가격이 조금씩 올라도 ‘어쩔 수 없지’라면서 조금씩 덥혀지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마취되어 삶아지게 됩니다. 강하게 깨어있지 않고서는 올곧게 살 수 없는 거대한 ‘빅 브라더’의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주 일입니다. 지방 소도시를 갈 일이 있었습니다. 역전(驛前)에 마련된 흡연구역 앞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습니다. 담배 세금이 오른 후에 흡연가들이 남기는 꽁초는 점점 짧아지고 초라해집니다.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노숙자풍의 사내들이 담배 꽁초를 주워 모으고 있었습니다. 조금 긴 꽁초는 그 자리에서 불을 붙여 피우고 짧은 꽁초는 봉지에 담아 모으고 있었습니다. 차곡차곡 모아 담배만 모아 말아 피우려는 의도 같았습니다. 꽁초를 줍는 그들의 모습은 바빴고 황급했습니다. 행여 누가 보지는 않을까 싶어 감추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중독된 삶은 구차하고 추레했습니다. 

가지지 못한 자나 가진 자나 중독된 삶은 모두 안타깝습니다. 단호하게 마음 먹어도 수십년 지녀온 습관은 버리기 힘들고 중독을 풀어 줄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저런 모습으로 담배 꽁초를 말아 피우고 있습니다. 그 삶의 모습을 보자 우리 사회가 점점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미래로 갈수록 사람살이의 질도 높아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일텐데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지도층이라고 하는 자들의 행태는 전혀 지도자스럽지 않고 고위층이라고 하는 자들의 모습은 전혀 고위스럽지 않습니다. 그저 제 자신과 가족의 부귀와 안위만을 염려하고 치부에 여념이 없는 그런 몰철학(沒哲學)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그들은 세치 혀로 사슴의 가죽을 말의 가죽이라고 우기고 개가죽을 소가죽이라 호도하고 그리고 이 땅의 우민(愚民)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여 소가죽과 개가죽을 구별 못하고 사슴과 말의 차이를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중독되고 마취되어 세상에서 버려지고 소외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른 세상은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길거리 담배 꽁초나 주워 피우는 그런 사회는 결코 바른 사회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처럼 가진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있으면 못 가진 자들이 기거할 수 있는 세상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그들이 주워 필 수 있는 담배 꽁초가 무성한 세상. 그런 세상이 결코 꽁초를 줍는 자들의 이상향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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