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이 오누나
다시 4월이 오누나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03.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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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기억은 그것을 함께하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세월이 바래서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기억이 쌓여서 역사가 된다. 더불어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기억은 추억으로 희미해지고 결국 사멸한다.” 방현석이 지은 <더불어 아름다웠던 시절>에서 찾아내 독서록에 적어 둔 귀절이다.

다시 4월이 오누나. 

그 사이 나는 무수히 많은 봄바람을 맞았고, 꽃샘추위에 어쩔줄 몰라하면서 두터운 겨울 옷을 들었다 놨다 더딘 봄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봄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얼었던 땅을 꿈틀거리게 하고 그 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봄기운이 스며들어 마침내 뿌리에서 줄기로, 그리고 앙상한 가지와 꽃눈에게까지 물이 오르게 하는 기운이 되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나니. 4월이 다가오고 있음이 하냥 잔인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기대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기억이라는 것은 그것에 이르기까지 받았던 충격의 크기와 함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갈수록 깊어지기도 하고 희미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흐뭇한 기억이 아니라면 기억에서 지워지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인데, 그 기억이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의 입장이 되면 트라우마가 되어 씻겨지지 않는 한으로 남거나 다른 식으로 포장해 덮어버리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아픈 기억들은 방현석의 표현대로 누구에게는 역사로 길이 남기를 바랄테고, 또 다른 누구는 역사에서 지워지기를 간절히 고대할텐데, 그 속내에는 어김없이 반성의 정도가 자리잡고 있다.

가슴 아픈 기억에는 늘 희생이 담겨있다. 그것이 천안함의 경우처럼 어찌됐던 숭고한 국가주의일 수 있겠고, 세월호처럼 안타깝고 허무한 처지일 수도 있는데, 그 희생의 아픔이 가득 새겨진 4월이 어찌 잔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억을 역사로 남기려는 자와 한 때의 실수에서 비롯된 추억으로 치부해 사멸되기를 희망하는 대립과 갈등에는 우리 사회 주류와 비주류의 구별이 있다.

세월호와 천안함, 그리고 4.19에 이르기까지 4월을 찬란한 잔인함으로 되살아나게 하는 희생들은 어김없이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에서 비롯되는 차이와 간극이 있다. 

우리는 ’국민의 이름’이거나 ’대중의 선택’을 근거로 끊임없이 ’주류’의 시각으로 사회 전반을 포섭하려는 시도와 흔하게 마주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 포섭의 시도가 자행될 수 있음은 ’국민’과 ’대중’을 균질적인 존재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과 세월호가 배와 물속이라는 동질성이 있음에도 사회 전반을 움직이려는 주류의 시각에는 극과 극으로 다른 접근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지 않은가. 4.19 역시 혁명이라는 긍정의 역사로 길이 아로새겨야 한다는 입장이 오래전에 이미 정리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에 도전하는 불손함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다른 쪽의 주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저런 하수상한 세월 속에서 4월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 4월의 찬란한 햇살과 부드러움 바람, 그리고 얼었던 몸을 완전히 풀어 제치며 심장박동처럼 물흐름의 소리를 키워가는 시냇물에 희망을 품게 됨은 4월에 절정을 이룰 꽃들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수준이라는 청년실업을 비롯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는 서민경제, 거기에 세금폭탄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쉽사리 아름다울 수 없는 4월, 유난히 꽃을 기다리며 청춘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그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시 한 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다시 어김없이 4월이 오누나. 개나리 민들레 그래도 희망인 사람들 기억의 틈에서 봄은 여전히 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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