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꽃
헛꽃
  • 이은희 <수필가>
  • 승인 2015.03.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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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희 <수필가>

중년 남자가 꽃대궁을 사정없이 꺾고 있다. 그의 발밑에는 주먹만 한 꽃대가 너저분하다. 난 그의 손을 저지할 양 꽃대를 왜 꺾느냐고 묻는다. 그는 말없이 줄기에 돋아난 빨갛게 물오른 촉을 손으로 가리키며 “일손이 없다.”며 딴말을 한다. 말없이 지켜보고 있자니 이어 말을 잇는다. 새싹을 위하여 마른 꽃대를 꺾고 있는 중이란다. 감상을 내세운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미래의 수국 축제를 떠올린 것이다.

절기상 화려한 수국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저 바람에 서걱대는 억새처럼 마른 수국이라도 보고자 태종대를 오른 것이다.

나는 알레르기도 마다치 않고 부산에 온 길에 수국으로 유명한 사찰을 보고 싶다고 우겼다. 그런데 마른 꽃대마저 꺾여 바닥에 나뒹구는 수국의 잔해라니…. 참으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사찰내 구석구석 마른 수국이 지천이다. 인기척은 없고 마른 수국이 바스락거릴 듯 스치는 바람 소리와 스님의 청아한 독경 소리가 울려 퍼진다. 꽃대를 흔드는 바람도 지쳐 보인다. 겨우내 바삭하게 마른 자잘한 꽃잎들을 간직한 꽃대들. 그 꽃대를 부수지도 꺾지도 못한 바람이다. 결국, 수국은 사람의 손에 꺾여지고, 바람 때문인지 머리를 산발한 듯 주위가 너저분하다.

경내를 거닐며 어느 즘에서 눈을 감고 상상에 든다. 수천 개의 꽃봉오리가 핀 여름날 황홀했던 그 순간을. 그 화려함이 수많은 인파를 부르고, 발 없는 말은 육지에 머무는 나에게까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을 정도다. 지인의 블로그에 분홍 빛깔과 청보라 빛깔로 피어오른 수국꽃 무더기. 꽃을 거듭 바라보며 감탄했고, 그곳으로 달려가는 꿈을 얼마나 꾸었던가.

수국 축제가 벌어지는 태종사가 있기까지는 수국을 사랑한 도성 큰스님이 존재한다. 스님은 명승지나 산사를 순례하며 수국을 가져다 심었단다. 수국은 꽃에서 이슬을 받아 공헌했다고 하여 감로수 꽃이라 일컫는다. 아무튼 수천 개의 주먹만 한 꽃대에 작은 꽃들이 활짝 피어 사찰은 황홀하다 못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꽃잎은 빛과 토질에 따라 흰색과 분홍색, 보라색 등 카멜레온처럼 색깔이 변한다. 더 신기한 것은 한 꽃대에 열매를 맺는 깨알같이 작은 진짜 꽃(양성화)과 둘레 가장자리에 큼지막하게 핀 헛꽃(중성화), 꽃잎이 두 가지다. 꽃이 피기 시작하여 겨우내 마른 꽃으로 존재하는 것이 헛꽃. 우리의 감성과 시선을 마지막까지 사로잡은 꽃이 바로 가짜 꽃이다.

내가 보기엔 헛꽃은 가짜 꽃이 아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무슨 대수이랴. 어찌 보면, 그의 존재가 있었기에 진짜 꽃이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성난 비바람에도 끝내 흐트러지지 않고 끝끝내 꽃대를 세우는 헛꽃의 존재를 보아야 한다. 헛꽃의 생애를 제대로 보아야 수국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리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이가 있다.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의 삶이 그러했고,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하여 발원하는 스님의 독경 소리가 그것이다. 인적 없는 사찰에 화답하는 이는 마른 수국밖에 없는 것 같다.

수국은 중생의 삶을 간과할 수 없어 스러지지도 못하고 서걱거리며 서 있나 보다. 머지않아 인간의 손에 꺾여 누군가의 거름이 되거나 불쏘시개로 열반에 들리라. 마른 꽃대는 화사한 모습은 잃었지만, 햇살 때문인지 마른 꽃잎에 붉은 여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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